점 선 면 조형요소 탐구한 '무아', '적·연_틈' 발표
대만 화이트스톤갤러리의 권순익전 큰 호응
재일교포 3세 작가 최아희 개인전도 열려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묵묵히 그리고 쉼없이… 작가 권순익(65)이 작업에 임하는 태도다. 근래들어 일본 대만 그리고 유럽 미국 등지에서 더욱 각광받고 있는 권순익 작가가 일본계 다국적 화랑인 화이트스톤갤러리 서울점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서울=뉴스핌] 권순익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화이트스톤갤러리 서울지점 1층 전시장. [사진=이영란 미술전문기자] 2024.06.27 art29@newspim.com |
일본을 대표하는 화랑으로 도쿄 홍콩 타이페이 등에 지점을 두고 있는 화이트스톤갤러리는 지난 2022년부터 권순익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화이트스톤은 상하이의 대표적 아트페어인 아트021을 비롯해 홍콩의 아트센트럴 등에 권순익 작가의 작품을 선보였고, 지난해 7~8월에는 대만 타이페이의 화이트스톤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타이페이에서의 권순익 개인전은 개막 첫날 작품이 10점이나 판매되는 등 호응이 매우 뜨거웠다. 이에 화이트스톤측은 그 여세를 몰아 이번에 서울점에서 권순익 개인전을 개최한 것. 전시 타이틀은 '나의 오늘'이다.
지난해 9월 서울 용산구 소월길에 서울 지점을 개관한 화이트스톤이 한국작가 개인전의 첫 주자로 권순익을 낙점한 것에서 이 화랑이 작가를 각별히 챙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이트스톤의 고에이 시라이시 대표는 권순익 작가 작품의 높은 밀도와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권순익의 회화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탄탄하게 직조되어 있고, 색채 조합이 더없이 깊고 독특하기 때문이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흑연으로 마감한 검은 기와작품 앞에 선 권순익 작가. [사진=화이트스톤 갤러리] 2024.06.27 art29@newspim.com |
권순익은 '빛'을 사랑하고, '시간'에 주목한다. 그가 2차원의 평면 회화에서 빛을 창조하기 위해 쓰는 재료는 뜻밖에도 새까만 흑연이다. 매 작업의 마무리 단계에 두꺼운 흑연 심을 문지르고 또 문지르며 칠한다. 흑연이 주는 독특한 광택감 때문에 권순익 작품은 조명이나 햇빛을 받으면 흑연으로 처리한 검은 부분에 오묘한 빛이 생겨난다.
권순익은 사용하는 물감 또한 독특하다. 고운 모래를 아크릴물감에 섞어 꾸덕꾸덕한 질감의 안료를 만들어 작업한다. 특별 제조(?)한 이 꾸덕한 안료를 캔버스에 겹겹이 쌓은 뒤 쌓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곤 그 위를 나이프나 조각칼로 도려낸다. 마치 수행하듯 힘들고 지난한 과정을 거듭하는데 작업의 특성상 권순익이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드는 시간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이 걸린다. 그는 고행과도 같은 이같은 작업을 '명상'의 과정으로 여긴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미술전문기자=서울 남산 화이트스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순익 작가의 '나의 오늘' 전시 전경. 2024.06.27 art29@newspim.com |
권순익의 이번 '나의 오늘'전에는 그간 제작한 회화 시리즈가 망라됐을 뿐 아니라 흑연을 칠해 만든 장엄한 기왓장 설치작품 등 총 36점이 나왔다. 즉 점, 선, 면의 조형요소를 탐구하며 작업한 '무아(無我)' '적·연(積·硏)_틈'을 작가의 대표적 연작이 두루 출품됐다.
'점' 요소가 강조된 '무아(無我)' 연작은 캔버스 위에 다양한 색조의 물감으로 작은 원을 무수히 그린 후, 그 위에 고운 모래와 물감을 섞어 다시한번 쌓는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고 평면성과 입체성을 혼재시켰다.
불교 철학에서 '영원하고 독립적인 실체가 존재하는 자아는 없다'는 개념의 '무아'는 권순익에게는 캔버스와 하나가 돼 작업에 몰입하면서 자아를 비워내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새로운 대작들을 통해 점의 무한한 확장성과 변화무쌍한 변주를 보여준다. 작가는 다양한 색과 면의 조화를 통해 작품에 공간감과 깊이감을 더하고 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06.27 art29@newspim.com |
'선'과 '면'이 돋보이는 '적·연(積·硏)_틈' 연작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화폭에 공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권순익은 이 연작에서 시간성을 통합해 복합적인 구조를 만들었다. 즉 '적(積)'은 물감을 층층이 쌓아올리는 과정이며, 작가가 쌓아온 시간과 경험, 과거를 가리킨다. '틈'은 이러한 물감층 사이에 생긴 공간이다. 작가는 이 틈에 흑연을 끝없이 문지르고 다듬는 '연(硏)'의 과정을 거쳐 어둡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질감을 완성한다. 이로써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 즉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의 순간을 깨닫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다.
한편 2018년부터 시작된 작가의 기와 설치작업은 흑연을 기와에 문질러 형태와 질감을 강조한 것이다. 작가에게 기와는 마음의 거울인 '심경(心鏡)'이자, 자아를 나타내는 또다른 요소이기도 하다. 흑연을 끊임없이 문지르고 반복적으로 칠해가는 작업방식은 고행을 마다치 않는 작가의 묵묵한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내적 수련'의 과정이다. 그 결과 거칠어 보이는 흑연의 물성은 긴 시간의 작업 끝에 반짝이는 새로운 물성으로 재탄생된다. 오랜 시간 수양하며 깨달은 '오늘'에 대한 진중한 철학이 오롯이 담기게 된다.
[서울=뉴스핌] 은행에 다니다가 창작작업이 좋아 독학으로 미술을 연마한 재일교포 3세 최아희 작가. 자신의 신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이영란 미술전문기자] 2024.06.27 art29@newspim.com |
한편 화이트스톤갤러리는 지하 1층 전시장에서 일본의 젊은 차세대 작가 최아희(43)의 첫 한국 개인전 '365 인스피레이션'을 열고 있다. 재일교포 3세 작가인 최아희는 일상 속 작은 아름다움을 마치 일기 쓰듯 자유분방하게 캔버스에 담아냈다. 파스텔톤의 최신 회화시리즈와 조형물, 스케이트보드를 활용한 작품 등이 나왔다.
은행에 다니다가 미술작업이 좋아 독학으로 미술을 연마한 작가는 이제는 미국 등지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할 정도로 작업의 토대를 닦았다. 그림 외에도 신발, 와인 라벨, 휴대전화 케이스, 심지어 악기 디자인까지 예술창작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다. 두 전시는 7월 21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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