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안보의 위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부의 대응은 안일하다. 북한에 대해 도발과 대응, 대응과 도발로 이어지는 강대강 대치에만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도발 대응을 위해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신속하게 정지하겠다고 공언했다. 9·19 군사합의는 군사적 취약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한이 군사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신 장관의 주장만으로는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고 믿기 어렵다.
9·19 군사합의는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남북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남북은 이 합의를 통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훈련과 군사분계선 상공의 비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상호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다. 북한이 합의를 위반했다고 해서 평화의 시대로 나가고자 만든 군사합의를 무작정 파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9·19 군사합의가 있었던 2018년부터 북한은 17차례 합의를 위반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9·19 군사합의 전까지 약 237회의 대남 국지도발에 견주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은 대폭 완화됐다고 볼 수 있다.
군사합의 효력정지로 인해 대북 확성기와 전단 살포까지 재개되면 오히려 북한의 도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합의가 사라진다는 건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막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최소한의 안전망이 동시에 없어진다는 것과 같다.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가 오히려 북한에 도발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박성준 정치부 기자 |
9·19 군사합의가 사라지면 북한도 마찬가지로 휴전선 일대에 비행을 강화하고 더욱 강한 장사포를 휴전선 바로 앞에 배치할 수 있다. 북한이 휴전선 바로 앞에서 장사포로 서울과 경기도를 공격한다면 하루 사이에 수천, 수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은 즉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이미 사라진 생명은 돌아올 수 없다. 이런 처참한 결과에 군사합의 파기의 원인이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국방부와 통일부 사이에서도 온도차가 있다. 국방부가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제3차 발사 도발을 감행하면 효력정지를 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통일부는 향후 북한 행동에 따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군사적 측면을 우선 고려해야 하는 국방부와 달리 통일부는 모든 사안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군사적 이점만 고려할 게 아니라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군사합의 효력정지의 근거로 삼기에도 어색하다. 군사합의에선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서부 상공은 20km, 동부 상공은 40km 상공에서 고정익 항공기의 군사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정찰위성은 이보다 훨씬 멀고 높은 곳에서 운용된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군사합의 효력정지의 이유로 보긴 어렵다.
정치적으로 봐도 명분은 적다. 9·19 군사합의를 공식 사문화 선언하게 되면 우리나라가 평화를 깼다는 여론이 나올 수도 있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 등 여권이 부담을 안게 되는 셈이다. 헌법은 66조 3항에서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했다.
이런 점에서 신 장관의 안보는 마치 신기루 같다. 겉보기엔 시선을 끌지만, 도대체 실체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잡는 '두더지 잡기'식 안보를 넘어 근본적인 평화를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 힘을 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를 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꼭 필요한 이 고민이 없다면 안보의 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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