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금융사 불공정약관 129개 시정조치
시정조치 요청 뒤 3개월 뒤 약관 개정 예상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A은행의 청소년 대상 선불전자지급 서비스를 받고 있는 김모(17)군은 갑자기 선불카드를 쓸 수가 없게 됐다. 알아보니 은행이 모바일 앱을 통해 공지한 내용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복잡한 금융 약관을 이해하지 못한 김군은 부모님께 하소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핀잔뿐이었다.
#B은행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황모(42)씨는 최근 은행 전산시스템 에러로 중요한 송금을 하지 못했다. 기간 내 송금을 하지 못해서 황씨는 불이익을 얻게 됐다. 은행에 항의했지만 계약 상 은행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인터넷 장애는 책임이 없다는 황당한 소리만 들었다. 결국 모든 손해는 황씨의 몫이 됐다.
한 은행 상담창구에서 소비자가 계약 조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핌 자료실] 2023.09.07 biggerthanseoul@newspim.com |
앞으로 이같은 피해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소비자의 피해를 염두에 두지 않는 금융사의 면책조항이 상당수 시정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은행(상호저축은행 포함)에서 사용하는 총 1391개의 약관을 심사한 가운데 129개 조항이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한다고 판단, 금융위원회에 시정을 요청했다.
공정위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금융·통신 분야의 경쟁촉진 방안'을 보고했다. 이 대책을 기초로 금융거래 약관을 심사, 소비자에게 불이익한 약관조항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시정요청해 나갈 것임을 밝힌 바 있다.
대표적인 주요 불공정 유형으로 은행이 자의적으로 서비스를 중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게 해 고객의 예측가능성을 저해하고 불측의 피해를 줄 수 있는 약관이 문제였다. 이 가운데 '기타 앱 등을 통해 안내하는 사항'과 같이 계약 당시에는 고객이 예측할 수 없는 추상적·포괄적인 사유로 은행이 임의로 서비스를 제한할 수 있게 한 경우가 있었다.
고객에게 시정 기회를 주지 않고 '별도 통지 없이' 서비스를 중지할 수 있게 한 경우도 드러났다.
비대면·온라인·모바일 방식의 은행거래 약관 중 은행이 고의·중과실인 경우에만 책임을 지는 약관도 문제로 꼽혔다. 이 약관은 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인 전산시스템이나 인터넷에 장애가 생긴 경우에도 은행의 경과실 책임이 면제되고 이에 따라 발생한 손해를 고객이 부담하도록 정해 공정위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고객의 이의제기권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조항, 고객의 예금을 은행에 대한 채무변제에 충당하기 위해 상계하는 경우 변제 대상 채무의 종류를 정하지 않고 은행에 채무변제 충당권을 포괄적으로 부여한 조항 등 고객에게 불리한 불공정 약관이 다수 파악돼 시정될 예정이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진=뉴스핌 DB] 2021.11.12 jsh@newspim.com |
공정위는 이번 시정요청을 통해 불공정 약관 다수가 시정돼 은행을 이용하는 소비자, 중·소기업 등 금융거래 고객들의 불공정 약관으로 인한 피해가 예방되고 은행의 책임은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은행에 시정조치를 취하게 되고 통상적으로 각 은행이 약관을 개정하는 데 3개월 가량이 소요된다"며 "현재 심사 진행 중인 여신전문금융 및 금융투자 분야에서의 불공정 약관도 신속하게 시정 요청해 금융 분야의 불공정한 계약관행을 해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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