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유죄 판결 있어야 수익 환수
박사방 조주빈 사건 당시 필요성 거론
전두환 손자 폭로로 필요성 재조명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 국회 계류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이원석 검찰총장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의장을 만나 '독립몰수제'를 논의한 가운데 입법에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독립몰수제는 범죄자가 해외로 도주하거나 숨져 최종 유죄 판결을 받지 못하더라도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제도다. 미국과 독일, 호주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최근 고(故)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가 일가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고 나서면서 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라자 쿠마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의장과 악수를 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검찰청] |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총장은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라자 쿠마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의장과 박정훈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을 만나 '독립몰수제' 도입을 논의했다.
FATF는 가입국들의 범죄수익 몰수를 의무화하기 위해 권고사항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총장은 이날 접견에서 국가 간 검은돈 회수가 원만히 진행되지 않을 때 회수가 잘되도록 FATA가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검찰은 독립몰수제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현행법상 범죄자의 재산 몰수는 법원이 최종 유죄 판결을 내려야 가능하다. 재판 도중 피고인이 숨지거나 해외로 도피할 경우 범죄로 거둔 수익은 추징이 불가능해 가족이나 자녀에게 상속되기도 한다. 이 경우 독립몰수제가 시행되면 검찰의 청구와 법원의 결정으로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검찰이 텔레그렘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을 기소할 당시 거론된 바 있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으로 성 착취물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독립몰수제로 박탈시키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독립몰수제는 고 전두환 씨가 미납한 900억대 추징금 몰수 방안으로도 여러 차례 언급됐다. 추징은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이지만 전 씨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최근 그의 손자 전우원 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을 중심으로 전씨 일가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고 나섰지만 현행법 안에서는 추징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광주=뉴스핌] 조은정 기자 = 고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오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있다. 2023.03.31 ej7648@newspim.com |
국회에서도 독립몰수제 도입을 위한 입법 시도가 있었다. 현행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범죄자가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 법원이 독립적으로 범죄수익 몰수를 선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를 개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대검찰청도 2020년 형사소송법학회와 범죄수익 환수 쟁점과 발전 방향을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열고 독립몰수제 도입을 논의하기도 했다. 아울러 국가 범죄수익환수 시스템 구축의 일환으로 법무부와 입법화를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 위반 등의 이유로 법안은 아직 계류 중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범죄수익 몰수에 앞서 심문기일을 열거나 불복 절차를 마련하는 방안 등을 통해 한국 실정에 맞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FATA가 가입국의 범죄수익 몰수를 의무화하더라도 권고사항 자체의 강제력은 없다. 결국 국내에서도 입법이 이뤄져야 실질적인 독립몰수제 시행이 가능한 셈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총장과 라자 쿠마 의장의 논의를 계기로 입법화에 관심이 모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독립몰수제가 시행되면 범죄수익을 박탈할 뿐 아니라 범죄 피해자들에게 이를 폭넓게 돌려줄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며 "수익을 목적으로 범죄에 이르게 되는 요인도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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