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이 실존 법인 사칭
알바천국 이력서 보고 '마수' 뻗쳐
[서울=뉴스핌] 윤준보 기자 =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자신도 모르게 범행을 도운 여대생이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1-2부(김동현 부장판사)는 사기, 사문서위조·행사 혐의로 기소된 A(23)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지난 16일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같은 법원 형사12단독(심태규 판사)은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80시간을 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대학 2학년생이던 A씨는 겨울방학에 할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12월 구직사이트 '알바천국'에 이력서를 올렸다. 그러자 곧 누군가 연락해와 자신을 한 법무법인의 외근직 담당 업무 실장이라고 소개한 뒤 '외근직으로 단순 서류 전달 및 회수 업무를 하면 건당 10만원씩 주는 자리가 있다'며 면접을 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A씨에게 온라인 면접을 봐야 한다며 카카오톡으로 사이트 링크를 보내줬다. 이 사이트엔 '법무법인 OO에 채용문의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와 법무업무 협약식 사진, 지원경로를 묻는 설문 등이 있었다. A씨가 법무법인 OO을 포털에 검색해 보니 서울 서초동에 실재하는 법무법인이었다.
A씨는 이 사이트에 접속해 온라인 면접을 보고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후 A씨는 자신을 채용담당자라고 밝힌 자로부터 텔레그램 대화방에 초대받아 그 방에 있던 '실장', '팀장' 등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았다.
이들이 지시한 업무는 서울, 경기 지역을 다니며 자신들이 알려준 사람을 만나 현금 1000만원 내지 2000만원 상당을 건네받고 자신들이 일러준 계좌들로 100만원씩 나눠 무통장입금하는 것이었다. 이 업무를 하루에 두 번씩 하게 했다. 때로는 '채무 변제 내역 확인서'나 '원금 상환 증명서'라는 제목의 문서 파일을 보내주고 이를 출력해 현금을 내주는 사람에게 건네주도록 했다.
[서울=뉴스핌] 윤준보 기자 =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 전경 2022.04.20 yoonjb@newspim.com |
이들의 정체는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A씨가 이들의 지시에 따라 현금으로 받아 입금한 돈은 이들 일당이 소위 '작업'을 친 것이었다. 그들은 금융기관에 빚이 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대출 신청을 받은 뒤 피해자들의 채권기관을 사칭해 "대환대출이 불법"이라고 공갈, 기존 대출금을 현금상환하도록 유도하고 A씨를 해당 금융기관 사람으로 믿게 해 현금을 내주도록 하는 수법을 썼다. A씨가 현금을 받으며 내주도록 한 문서도 이들이 거짓으로 꾸민 것이었다.
A씨는 이 일을 시작한 지 3일(주말 제외)이 지난 다음날 아침 '실장'으로부터 '문신확인 등을 위해 신체가 노출된 사진을 보내라'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A씨는 이를 수상히 여겨 거절한 뒤 곧장 법무법인에 전화해 자신이 채용된 것이 맞는지 물었다. 이어 친구들과 상담한 끝에 같은날 오전 경찰서를 방문했다. 자신이 한 일이 보이스피싱에 해당한다는 담당 경찰관의 설명을 들은 A씨는 변호인을 선임해 경찰에 자수서를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미필적으로 자신의 행위가 불법 금전 수수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충분히 인정된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2심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고인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 결과발생 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없었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성명이나 소속을 속이는 말을 하진 않았다"며 "피해자들이 피고인을 금융기관 측 직원으로 오인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보이스피싱 콜센터 조직원들이 사전에 전화상으로 피해자들을 기망한 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검사 측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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