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인 줄 알고 체크카드 건네…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
1·2심 유죄 → 대법서 무죄취지 파기환송…"속아서 준 것"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에 넘긴 체크카드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된 경우 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 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제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앞서 김 씨는 지난 2019년 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이 보낸 대출 가능 문자를 받았다. 그는 "2000만원 이상의 대출이 가능하다. 이자 상환은 본인 계좌에 대출 이자를 입금해놓으면 내가 체크카드를 이용해 출금할 것이니 이자 상환에 필요한 체크카드를 보내달라"는 얘기를 듣고 체크카드를 건넸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이었고, 김 씨의 체크카드는 보이스피싱 범행에 사용됐다. 검찰은 김 씨가 향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무형의 기대이익을 받을 것을 약속하고 전자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접근매체를 빌려줬다며 그를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사건까지 추가돼 병합 심리됐는데, 2심 역시 유죄 판단을 내리면서 김 씨는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체크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저금리 대출 등 금융거래상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고, 이런 피고인의 '접근매체 대여행위'와 그로 인해 주어지는 '금전대출로 인한 이익'은 서로 밀접하고도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며 "설령 보이스피싱 등 추가 범행에 사용되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범행 성립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같은 판결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특히 대법은 김 씨가 체크카드를 건넨 뒤 성명불상자에게 보이스피싱이 아니었는지 되물은 점, 이 사건 이전에 형사처벌을 받거나 보이스피싱 범행에 연루된 적이 없는 점 등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대출금 및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성명불상자의 기망으로 체크카드를 교부한 사람으로서, 대출의 대가로 접근매체를 대여했다거나 카드를 교부할 당시 그런 인식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심은 전자금융거래법의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어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 법원에 환송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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