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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슈+] '위안부 배상' 판결 이후 한일관계는…"판도라의 상자 열렸다"

기사입력 : 2021년01월09일 08:00

최종수정 : 2021년01월09일 08:00

조진구 "한일관계, 끝이 없는 어두운 터널 진입"
"해태하고 있는 양국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 필요"
법원 "日정부, 위안부 피해자에 1억원씩 배상해야"
일본 "매우 유감이며 주권면제 원칙 부정한 판결"

[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한국 법원이 8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미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으로 악화된 한일관계에 상당한 악영향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당장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이어 '2015년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깨트리는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이날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1명당 1억 원씩 배상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가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김강원 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01.08 pangbin@newspim.com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여러 건 있으나, 이 중 판결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승소한 배춘희 할머니 등은 일제강점기 폭력을 사용하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위안부에 동원됐다며 지난 2016년 일본에 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 일본 정부 "수용 불가…주권면제 적용 각하돼야 할 사건"

일본 정부는 판결 직후 남관표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하며 즉각 반발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기자회견에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자국에 대해 '주권면제'가 적용돼 사건이 각하돼야 한다는 입장을 누차 표명했다면서 이번 판결이 국제법상 주권 면제의 원칙을 부정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국제법상 '주권면제'란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의미하며 '국가면제'라고도 한다.

가토 장관은 또 한국과 일본 사이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다 해결됐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에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해결이 일한 양국 정부 사이에서 확인도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울지법은 이날 판결에서 "원고들은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우리 법원이 외국 법원인 피고에게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주권면제가 이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돼 우리 법원이 피고에 대한 재판권 행사를 할 수 없는 것인지가 쟁점"이라며 "이 사건은 피고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자행된 범죄행위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면제(주권면제)가 적용될 수 없다고 보는 게 상당하다고 판단된다"면서 "우리 법원은 피고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논평을 통해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이라며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판결이 외교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여 한일 양국 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부연했다. 

외교부는 이날 주일본대사로 임명한 강창일 전 의원의 부임을 계기로 이번 판결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협의에 나설 전망이다.

조진구 교수 "한일관계 풀어야 할 양국 지도자가 해태하고 있다"

문제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때처럼 '삼권분립' 존중을 원칙으로 내세운 정부로서는 이번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로 예상되는 한일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교도통신은 이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승소 판결을 속보로 전하면서 한일관계가 "한층 험악해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한국 법원의 이번 판결이 "일본 정부의 자산 압류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므로 충격은 일본 민간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징용 소송을 웃돈다"고 전했다.

일본 전문가인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오늘 법원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이어 한일관계 전망을 어둡게 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활짝 열렸다는 의미를 갖는다"며 "한일관계가 어두운 터널에 들어가는 데 끝이 없다. 끝이 없는 터널에 들어가는 거라 뚫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고 진단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이어 위안부 피해자까지 배상의 대상이 될 경우 많게는 20만명 이상의 줄소송이 예상된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사법부의 판단은 정치적인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양국관계를 풀려면 결국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한데 양국 정부 모두 문제가 있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뭔가 했어야 하는데 자국 정부 입장만 고집하다 양국 정부가 해태한 걸로밖에 볼 수 없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선 새로운 합의를 하려는 의지가 필요한데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양국 지도자가 책임을 회피한 한일관계 악화의 피해는 당장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양국 국민들이 피해를 볼 것이고 교역관계 악화로 인해 양국 기업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코로나로 힘든데 더 힘들어질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식민지에 대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문제는 일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제국주의도 마찬가지"라며 "사후입법에 대한 법리적 문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이 오는 20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의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미일 공조를 중요시하는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으로 한일갈등이 임계치를 넘었다고 판단할 경우 한일관계 개선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medialyt@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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