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지방 동지 세시...'팥죽부정치기'. '텃제사' 민속 전승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22일은 일 년 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다는 '동지(冬至)'이다.
전통사회에서 동지는 사실상 한해를 새로 시작하는 날로 여겨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부르며 독특한 세시의례를 담은 민속(民俗)을 남겼다.
경북 울진지방의 '동지' 세시풍속, 팥죽쑤기[사진=남효선 기자] |
과거 중국 주(周)나라에서는 동지를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설'을 바탕으로 이 날을 '설'로 삼았다. 역경의 복괘(復卦)가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오늘날 민간에서 여전히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전승될 만큼 전통사회에서 선조들은 동지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동짓날의 보편적 세시는 동지를 '팥죽 먹는 날'로 여기는 만큼 '팥죽먹기'와 '팥죽제사'가 대표적이다.
동해연안 울진지방의 동지 세시(歲時)는 어떤 모습일까?
울진지방 전통사회에서는 섣달 동짓날 아침에 '텃제사'를 지낸다. 텃제사는 토지신을 모시는 고사로 '안택고사'라고도 한다. 울진지방에서는 이를 '텃지지낸다'고 한다.
전통사회에서 농사를 짓는 집에서는 거의 대부분 동짓날 아침에 텃제사를 지내는데, 동짓날 이른 아침에 마당과 집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대문에는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둘렀다.
텃제사 제물로는 팥, 콩, 무 등을 넣은 시루떡을 장만하는데, 이때 쓰는 쌀은 그 해 첫 수확을 하면서 '제미동이'에 넣어두었던 햅쌀과 햇팥으로 시루떡을 만들었다.
텃제사는 대개 아침을 먹기 전에 집안에 '터주'를 모신 곳에 제상을 차려 지낸 뒤, '성주신'을 모셔놓은 안마루에 제상을 차려놓고 지낸다.
제상에는 멥밥(쌀밥)과 국, 나물, 포, 시루떡을 차렸다. 텃제사를 지내고 나면 집안과 이웃을 청해 제사음식을 나눠 먹었다.
전통사회, 동지 세시의 대표적 의례음식인 '동지팥죽'[사진=한국학중앙연구소] |
동짓날 낮에는 집집마다 팥죽을 쑤어 온 가족들이 둘러앉아 나눠 먹었다.
그 해의 동짓날이 월초에 들면 '애기동지'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지 않고 그냥 보낸다. 중순에 드는 '중동지'와 하순에 드는 '노동지'에는 반드시 팥죽을 쑤어 먹었다.
팥죽은 햅쌀과 팥을 적당량의 물을 넣어 계속 저어주며 죽을 쑨다. 먼저 우러나는 물은 퍼내어 버린다. 첫물을 버려야 쓴맛이 없고 배탈도 안 난다고 여겼다. 팥죽이 끓으면, 미리 찹쌀로 만들어 놓은 '새알'을 넣어 같이 끓인다.
동짓날이면 집안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대밭에 가서 새알을 주워오라'고 시키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이 말을 그대로 믿어 실제로 대밭을 쏘다니며 새알을 주우러 다니기도 했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전통사회, 경북 울진지방에서는 동짓날 낮에 집집마다 팥죽을 쑤어 온 가족들이 둘러앉아 나눠 먹었다. 2019.12.22. nulcheon@newspim.com |
◆ 동지에 눈 오면 풍년 징조...'팥죽부정치기' '동지 불공' 의례도
팥죽을 끓이다가 붉은 팥물이 올라오면 작은 바가지로 팥물을 떠서 집안의 벽과 바깥벽, 집안으로 들어오는 문 마다 뿌리며 액막음을 했다.
울진의 산간형 농촌인 죽변면 화성리에서는 이를 '팥죽 부정치기'라 한다. '팥죽부정치기'는 팥죽을 먹기 전에 행했다.
집안에 들어오는 부정한 것들을 물리치기 위한 '팥죽 부정치기'는 팥죽을 쑤는 며느리나 시어머니 등 여성들이 직접 행한다.
부엌에서 팥죽을 끓이다가 붉은 팥물이 올라와 죽이 되어 갈 때쯤 걸쭉해진 팥물을 덜어내 문에 바르고, 울타리 밖에 뿌린다.
이렇게 붉은 색의 팥물을 집안 곳곳에 뿌리면 액을 쫓는다고 여겼으며 사람이 먹기 전에 지신이나 수호신에게 먼저 대접한다고 여겼다.
또 울진사람들은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빨리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고 믿었다.
동짓날에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여겼다.
불심이 깊은 집안의 여성들은 늘 다니던 사찰을 찾아 '동지 불공'을 드리기도 했다. 이를 울진지방에서는 '팥죽 불공드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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