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했던 친구 '마약'에 빠진 후 절망으로 바뀐 인생
"마약만 끊으면 너는 분명 성공할 수 있어" 응원에 새출발 결심
마약 중독자가 놓은 덫에 걸려 교도소행..남은 건 후회 뿐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윤혜원 기자 = 최우영(가명)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된 친구를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다. 이미 수년이 지났지만, 최 씨는 친구를 서둘러 전문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일을 가장 후회한다. 친구의 마약 투약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때 친구를 막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매일 최 씨를 덮쳐왔다.
최 씨가 친구를 만난건 20살 무렵이었다. 첫 만남에서 몇 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최 씨는 친구가 총명하고 재능이 많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친구는 대학에 가지는 않았지만, 대학생보다 똑똑했고 말과 행동도 점잖았다.
둘은 1년도 지나지 않아 10년지기같은 사이가 됐다. 친구는 조금 내성적이었는데,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 친구가 어느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이 3년 전부터 마약을 투약하고 있고 이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고백이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18.11.20 kilroy023@newspim.com |
친구가 마약을 처음 접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선배가 “좋은 게 있다”며 최 씨의 친구에게 필로폰을 내보였다. 친구는 마약이 무엇인지, 필로폰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호기심에 투약한 필로폰, 친구는 곧 마약에 중독됐고 팔뚝에는 늘 바늘자국이 선명했다. 심지어 필로폰 구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교마저 그만두고 닥치는대로 돈을 벌었다. 친구는 약을 구하기 위해 밤낮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녔다고 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친구는 곧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처음으로 구속됐고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됐다. 친구의 부모님은 “아들은 출소 후에도 전혀 반성하는 기색없이 다시 필로폰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친구의 주변에는 폭력배나 유흥가 업주 등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만 가득했다.
그랬던 친구는 대학생 최 씨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했다. 최 씨는 명석했던 친구의 미래가 걱정돼 그림자처럼 쫒아다니며 “마약만 끊으면 분명 성공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최 씨는 친구를 마약의 수렁에서 건져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들었다.
최 씨는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대학 도서관에서 여러 서적을 뒤져가며 마약에 대해 공부했다. 마약이 무엇인지 알아야 친구와 대화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낸 자료들을 복사해 친구에게 수시로 건네줬다.
더디지만 변화는 분명 있었다. 친구는 최 씨에게 “덕분에 3개월 동안 마약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심을 거둘 수는 없었지만, 실제로 친구는 안색도 좋아졌고 체중도 조금 늘어나 보였다.
맑은 정신으로 돌아온 친구는 마침내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최 씨와 친구의 가족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마약에 찌들었던 눈빛도 달라졌다.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느껴졌다. 최 씨도 친구의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해 강의가 없는 날이면 친구와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불행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을 찾아왔다.
마약과 멀어지기 위해 애써 연락을 끊었던 친구들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다. 이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친구는 최 씨에게 “먼저 도서관에 가 있으면 뒤따라 가겠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 날 이후로 이틀 동안 연락이 두절됐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틀 후 최 씨가 만난 친구는 금단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목소리는 쉬었고, 어디서 상처를 입었는지 몸에는 상처 투성이었다. 입고 있던 옷은 온통 진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불과 이틀이었지만, 친구는 옛날로 돌아가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거나 음침한 장소로 자꾸 몸을 숨겼다. 최 씨를 의심하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밖에서 형사들이 나를 잡으러 온 것 같은데, 너가 데리고 왔느냐”는 식이었다. 친구의 단약을 위한 최 씨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도서관에 가던 날 만났던 무리는 집요했다. 친구에게 쉴 새 없이 유혹의 메시지를 남기거나 밤중에 전화를 걸어왔다. 최 씨가 친구 몰래 이들의 메시지를 삭제하기도 했지만,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친구는 마약을 하고 돌아오면 잠도 자지 않고 도망다니기 바빴다. 그러다 집에 오면 다시 죽은 듯 잠에 빠져들었다.
최 씨는 친구에게 “자수해서 마약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런 최 씨에게 무릎을 꿇고는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빌었다. 최 씨도 그 모습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친구의 결혼식날, 결국 일이 터졌다. 이날 신랑 신부의 웨딩카를 운전해주기로 했던 최 씨의 친구가 결혼식 당일 갑자기 사라졌다.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잠깐 만날 사람이 있다”며 나갔다고 했다. 예식이 모두 끝나고 신랑, 신부가 공항으로 떠나야 했지만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신랑, 신부는 급하게 다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신혼여행을 떠났다.
최 씨와 몇 명의 친구들이 걱정하며 예식장을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급하게 달려왔다. 그는 “친구 녀석이 경찰 함정수사에 걸려든 것 같다”며 “지금 형사들에게 붙잡혀 경찰서로 끌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경찰서로 달려갔지만, 친구를 만날 수는 없었다. 소변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일절 면회가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찾아간 친구는 “누군가 내게 몰래 약을 타서 먹인 것 같다”며 “나는 그 날 너에게 무릎 꿇은 뒤로 마약에 손 댄 적 없다”고 토로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실제로 친구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당해 경찰에 붙잡혔다. 친구는 체념한 듯 “모두 내 잘못이다”며 “지금이라도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라고 말했다. 친구는 처음 교도소에 수감됐던 때와 달리 지금은 하루 하루 참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 씨 역시 아직 친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친구는 수감된 날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후회와 반성, 그리고 희망이 담긴 편지를 보내왔다. 최 씨는 친구가 돌아오면 “마약만 끊으면 너는 분명 성공할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말할 생각이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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