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 자금줄로 자리잡은 코코본드 시장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스페인 최대 은행인 산탄데르 은행이 12일(현지시각) 15억유로 규모의 코코본드의 중도 상환을 시행하지 않기로 하면서 주요 은행들이 같은 행보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 [사진=로이터 뉴스핌] |
올해 만기 도래하는 전세계 코코본드 물량은 135억달러. 산탄데르의 결정에 관련 채권은 극심한 하락 압박에 시달렸다.
이른바 AT1(Additional Tier 1) 채권으로 불리는 코코본드는 발행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 원금이 주식으로 전환되는 조건이 명시된 채권으로, 자본 비율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질 경우 주식 전환이 이뤄지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채권으로도 통한다.
코코본드는 11년 전 미국 금융위기 당시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한 금융권 구제금융 시행으로 납세자들이 눈덩이 부담을 떠안는 사태가 벌어지자 채권 투자자들이 유사 시 자본 전환을 통해 일차적인 손실을 감내하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코코본드에는 만기가 따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채권 발행 후 5~6년이 지난 시점에 이를 상환하도록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으로 통한다.
채권 발행 물량이 은행 대차대조표의 자본금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든든한 자금줄에 해당하는 만큼 미국과 유럽 은행의 발행이 봇물을 이뤘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에 투자자들의 매입 열기도 뜨거웠다.
만기가 명시되지 않았지만 5~6년 사이 파산할 리스크가 낮은 은행이라면 높은 수익률을 챙긴 뒤 투자 원금을 상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매수 심리를 부추긴 것.
하지만 산탄데르가 이날 관련 채권의 상환 대신 롤오버를 결정하면서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유럽 은행이 발행한 코코본드 가운데 중도 상환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유럽과 미국의 주요 은행들이 같은 수순을 밟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135억달러의 물량 역시 상환되지 않을 여지가 높다는 얘기다.
시장조사 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오는 6월 로이즈은행이 14억8000만파운드 규모 코코본드의 상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고, 이어 9월과 10월 바클레이즈(10억7600만유로)와 CIBC(10억 캐나다 달러)의 코코본드도 만기를 맞는다.
사실 지난 수 년간 코코본드 발행이 봇물을 이루자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 투자 리스크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 산탄데르 사태를 두고 투자자들은 시장의 경고가 들어맞은 셈이라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ABN암로의 톰 킨모스 채권 전략가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산탄데르 코코본드의 상환 불발은 관련 채권의 투자 리스크를 드러내는 단면”이라고 강조했다.
산탄데르와 같은 사례가 잇달아 발생할 경우 앞으로 코코본드의 발행 비용이 치솟는 한편 기존 채권이 과격한 하락 압박에 시달릴 전망이다.
산탄데르 코코본드를 매입한 파이낸시에 드 라 시테의 티모시 푸벨리에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코코본드 시장의 재앙”이라며 “신용시장 투자자들의 경계감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