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부터 펜스까지 북한 '저격' 백악관 신경 건드려
중국 기댄 김정은의 교만과 오판,'레드라인' 넘었다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좌)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최근까지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인 비핵화를 수용할 의사를 밝히면서 한 발 양보하는 움직임을 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으로 공식 서한을 통해 회담을 전격 취소하자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 현직 대통령과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상 최초 회담이 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것으로 결정될 때까지만 해도 순항하는 것으로 보였던 논의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북한 측이 회담을 재고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부터다.
지난 7~8일 중국을 전격 방문,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김 위원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반대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재차 주장한 데 이어 북한에 대한 매파로 통하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식 비핵화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며 회담 취소를 경고한 것.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식 모델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강조, 볼턴 보좌관의 발언을 깎아 내리며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날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도 그는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단계적으로 시행하되 최대한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으로, 당초 주장했던 이른바 CVID(온전하고, 확인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서 한 발 물러선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날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 고위급 회동을 갖고 내달 싱가포르에서 예정됐던 북미 정상회담의 사전 준비와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가질 계획이었다.
이처럼 비둘기파 행보를 취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돌연 마음을 바꾼 것은 워싱턴 안팎의 회의적인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김 위원장이 회담 취소를 언급한 이후 미국 정치권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와 타협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며, 계획을 단호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CNN은 이날 오전 백악관의 기류가 급랭했다고 전했다. 미국 고위 정책자들을 비판하며 일괄적인 비핵화 요구를 거부하는 북한의 태도가 정책자들의 신경을 긁었다는 것이 소식통의 얘기다.
처음부터 회담의 준비가 미흡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회담 제안을 받아들인 것부터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를 결정하기까지 지나치게 성급하다는 비판이 워싱턴 정치권에서 끊이지 않았다.
이날 로버트 메넨데스(민주당, 뉴저지) 상원의원은 상원외교위원회에서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일상적인 태도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라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중국이라는 거대 세력을 앞세워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북한의 경솔함도 도마 위에 올랐다.
북한은 풍계리 핵시설을 폐기해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서도 미국 정책자들을 향해 강한 비난을 쏟아냈고,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 외신들의 판단이다.
특히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정조준하자 워싱턴이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시 주석과 회동 이후 자신감에 충만해진 김정은 정권이 볼턴 보좌관에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이어 펜스 부통령까지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매파들을 향해 화살을 겨냥한 것은 ‘레드 라인’을 넘어선 행위였다는 지적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