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위험성·피해도 인식' 방사능 누출보다 많아
지난해 '살충제 계란' '유해성 생리대' 파동 이후 관심↑
[서울=뉴스핌] 김범준 기자 = 지난해 '살충제 계란'과 '생리대 유해성' 파동 등 생활형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편익이 크다며 소비를 이어가고 있다는 국내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은 한국갤럽과 함께 지난 1월 말부터 2주간 전국 성인 남녀 1541명을 대상으로 한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국민 대다수가 환경화학물질과 생활화학물질의 위험·피해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위험 발생 가능성'에 대해 응답자의 62.7%는 환경화학물질 노출을, 53.5%는 생활화학제품 안전사고를 꼽았다. 이는 신종감염병(52.4%)이나 방사능 누출(28.9%)보다 불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지된 위험 발생 가능성. <자료=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국민 인식조사' 보고서> |
'피해 심각성'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5.1%는 환경화학물질 노출을, 72.4%는 생활화학제품 안전사고를 들었다. 피해에 대한 인식 역시 방사능 누출(67.6%)보다 많았다.
인지된 위험 발생 시 피해 결과의 심각성. <자료=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국민 인식조사' 보고서> |
살균소독제와 세탁세제 등 일상에서의 생활화학제품 사용은 ▲여성 ▲40~50대 ▲고졸 학력 ▲주 1~2회 이상 빈도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이용 빈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의 행동은 잘 하지 않은 것으로도 조사됐다.
응답자 중 열 명 중 세 명만이 제품에 표기된 안전정보를 읽고 대부분 따른다고 답했다. 특히 '항상 따른다'는 사람은 단지 1%에 그치면서 유럽연합(EU)의 36%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을 보였다.
다만 소비자들의 32%가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소비세 지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46%는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성이 보장된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또 연구팀은 '위험 대비 편익 인식'에 따른 ▲저위험 고편익(38.4%) ▲저위험 저편익(33.2%) ▲고위험 고편익(15.5%) ▲고위험 저편익(12.9%) 등 4개 집단이 각기 다른 특성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위험·편익 인식 집단별 특징. <자료=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국민 인식조사' 보고서> |
이 중 '저위험 저편익' 집단이 화학물질 관리 관련 정책 리터러시(인지도) 다른 세 집단에 비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위험 고편익' 집단은 기피행동 또는 신체 이상증상 경험 등 극단적 반응양상을 많이 보였으며, '고위험 저편익' 집단은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조사 결과 응답자의 60.2%가 '살충제 검출 계란' 파동 당시 위험 정보에 자주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보를 직접 탐색한 경우는 26.7%에 그쳤다.
또한 '정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응답이 20.2%에 달했으며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대답도 19.7%에 달했다.
정부에 대한 요구로는 '규제·감독의 강화'가 51.6%로 가장 많았으며, '관리체계 구축 및 정비'(24.2%), '기업 역할 확대'(9.3%), '연구 개발 확대'(7.5%),' 위험정보 소통 강화'(7.3%) 순으로 이어졌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번 조사를 통해 '케모포비아'(Chemiphobia, 화학을 의미하는 케미컬과 혐오를 뜻하는 포비아의 조합어)가 우리 일상에서 심리적, 신체적 반응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단순히 물질의 독성이 높고 낮음을 관리하기보다 어린이·노약자 등 취약집단에 초점을 두는 사람 중심형 생활화학물질 위험 관리를 활성화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