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스·스커트 자유롭게 선택 가능한 '젠더리스 교복'
성 정체성 외에도 종교 등 다양한 이유 반영한 교복 속속 등장
[뉴스핌=김은빈 기자] 일본에서 4월은 벚꽃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다. 하지만 새 학기 새로 입는 교복이 고통스러운 학생들도 있다. 바로 신체와 정신의 성(性)이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성동일성 장애)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일본의 교복 제작사들이 새로운 교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6일 아사히신문은 성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선택해 입을 수 있는 교복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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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젠더리스 교복' 등장…"어떤 교복 입어도 괜찮아"
"선택지를 넓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어떤 교복을 입어도 상관없단다'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일본에서 교복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오카야마(岡山)현.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업계 최대 제조사 '톰보'의 디자이너 오쿠노 아유미(奥野あゆみ)는 기대감을 털어놓았다.
톰보는 오는 4월 문을 여는 지바(千葉)현 가시와노하(柏の葉) 중학교에 교복을 납품한다. 가시와노하 중학교는 성별에 상관없이 슬랙스(통 넓은 바지)나 스커트, 넥타이, 리본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시 교육위원회에 따르면 학생과 학부모 측에서 "트랜스젠더 뿐만 아니라 누구든 자유롭게 골라 입을 수 있는 교복이 좋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블레이저와 슬랙스를 골라 입을 수 있다. 모두 남녀 각각의 체형에 맞췄다. 또한 회색과 남색 무늬인 리본과 넥타이도 선택할 수 있다.
성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지바현 기사와시립 가시와노하 중학교의 교복 <사진=가시와노하 중학교> |
톰보가 성별에 관계없는 교복을 개발하게 된 건 지난 2015년부터다.
당시 문부과학성이 성소수자 학생을 배려하라는 통지를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내렸다. 이에 많은 학교가 트랜스젠더 학생을 어떻게 배려하면 좋을지 상담을 해왔다.
톰보 측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로부터 "남녀공용 디자인이라면 저항이 없다"라는 얘기를 듣고, 여성용 슬랙스 등 남녀 차가 적은 교복을 디자인했다. 작년엔 학교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젠더리스 교복' 부스를 설치했다.
오쿠노 디자이너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로부터 "내가 생각하는 성과 다른 성의 교복을 입어야 하는 게 고통스러웠다"는 말을 듣고 충격받았다고 한다.
그는 "쾌적하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보내기 위해 입어야 할 교복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다만 남녀 차가 없는 교복을 입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젠더리스 교복을 입은 학생은 본의 아니게 눈에 띌 우려가 있었다.
특히 남성용 스커트는 만들 수 없어 MTF(몸은 남성, 마음은 여성인 트랜스 젠더) 학생을 위한 제품 개발은 어려웠다. 겉보기엔 스커트같은 슬랙스도 디자인했지만 선택받지 못했다. 오쿠노씨는 "'교복다움'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점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오카야마현에서 교직원이나 학부모들에 성 소수자 관련 연수를 열고 있는 단체 '프라우드 오카야마'의 회원들은 이 같은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프라우드 오카야마의 회원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은 고교 진학 시 교복이 없는 학교를 골랐다고 말했다. 그는 몸은 여성이지만 자신의 성별이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인식하지 않는 성 소수자다. 그는 "중학교 시절 스커트에 리본 교복을 입으면 여학생이라는 걸 강요받는 느낌이었다"며 저지에 바지를 입고 리본을 달지 않는 방식으로 반항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중학생 때 성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교복이 있엇다면 교복입는 걸 즐겼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프라우드 멤버인 회사원(25)은 학창시절의 체험을 직접 학생복 회사에 얘기한 당사자다. 그는 몸은 여성이지만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하는 FTM 트랜스젠더다.
그는 "우리들(성 소수자)은 자신의 경험을 말해서 이해를 넓혀나가는 소프트웨어적인 접근 밖에 할 수 없다"며 "기업이 교복이라는 하드웨어 개혁에 나서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日 교복제조사 "다양한 성·배경가진 학생 즐겁게 교복 입길"
톰보 외에도 다양한 교복을 고민하는 제조사는 많다. 오카야마현에 본사를 둔 '아카시 스쿨 유니폼 컴퍼니'는 약 480여개의 학교에 여성용 슬랙스 등 트랜스젠더 학생을 배려한 교복을 제안했다. 아카시 측 담당자는 "당사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교복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다"며 "우리의 제안이 정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했다.
도쿄(東京)도 세타가야(世田谷)구의 교육위원회도 구립 중학교의 표준복(교복)을 성별에 관계없이 선택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구 교육위원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를 중심으로 학생복을 판매하는 지요타(千代田)구의 사토산업(佐藤産業) 스쿨웨어 사업부는 각 학교의 요청을 받아들여 여성 슬랙스를 늘리고 있다. 사토산업 관계자는 "모든 학생이 쾌적하게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는 교복을 제안할 필요가 분명히 늘고 있다"고 했다.
간코(菅公) 학생복은 2016년 전시회에서 몸의 라인을 알 수 없는 디자인이나 여성용 슬랙스를 이용한 교복을 '보더리스'라고 부르며 제안하기 시작했다.
트랜스젠더 학생 외에도 여성의 피부 노출 등을 피하려는 이슬람교 학생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
간코 학생복 관계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쾌적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여성용 슬랙스를 선택하는 학교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