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다세대주택 주차장은 사유지
도로가 아닌 탓에 행정력 동원 못해
[뉴스핌=김범준 기자] 원룸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30·서울 관악구)씨는 지난 토요일 저녁 모처럼 그녀와 밤드라이브 데이트 기회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연락이 닿지 않는 '이중주차' 차량 때문에 안쪽에 주차했던 자가용을 뺄 수가 없었던 것.
이씨는 "전화 수십통 걸고 문자 메시지도 여럿 남겼는데 전혀 응답이 없었다"며 애타게 발만 동동 굴렸다. 한 시간쯤 지나자 '멀리 나가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차를 빼줄 수 없다'는 회신이 왔다. 결국 이씨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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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의 한 원룸 건물 필로티 주차창에 차량이 이중주차된 모습. 이 건물의 경우 1열당 3중주차 구획선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
이씨는 "차를 놓고 멀리 나갈 계획이 있었으면 (안쪽에 주차된 차량 출차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게 당연한 에티켓이고 상식 아니냐"며 화를 가라 앉히지 못했다. "폼 좀 잡으려다가 어쨌든 약속 못지키는 남자가 됐다. (그녀와의 관계는) 다 끝났다"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집에 다시 들어갔다.
이중주차한 차량의 주인은 바로 같은 원룸 세입자. '혹시 자고 있나' 하는 생각에 방 문을 두드려도 봤다고 한다. 이씨는 경찰과 구청, 120 다산콜센터에 민원도 접수해 봤으나 모두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사유지(私有地)의 경우 근거법이 없어 견인 등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는 말 뿐이었다.
심각한 주차난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차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관련법과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주택법, 주차장법, 주택건설기준 등에서 규정한 의무 주차구획이 세대 수에 한참 못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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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결국 원룸과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지역, 혹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세대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 때문에 이중·삼중 주차 구획을 그려놓는 게 당연시 되는 풍토다. 이마저도 있으면 다행이다. 아예 주차장이 없는 건물도 있다.
도로에 이중주차된 경우라면, '도로교통법' 제35조와 36조를 근거로 경찰 또는 지방자치단체 시장 등은 해당 차량 소유주에게 이동을 명령할 수 있다. 연락처가 안 남겨져 있는 경우 차적 조회 등을 통해 연락할 수도 있다. 그래도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견인할 수 있다.
문제는 사유지다. 건물 내 주차장은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분류되지 않아 해당 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이나 지자체에서 견인 등의 조치를 할 수 없다.
'미안하다'고 사과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세입자 등 거주자의 차량이 아닌 경우 형법과 주택법 등을 근거로 주거침입죄 혹은 퇴거불응죄를 적용해 이동을 강제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년 전 인구 5만명 정도의 도농복합지역을 관할하는 지구대에서 근무했던 당시 하루 평균 10~15건 사유지 이중주차 민원이 접수됐다"며 "서울 같은 대도시의 경우는 하루 수백, 수천 건이 접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럴 경우 근거 법이 없고, 경찰이 지자체에 위임한 업무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다만 출입을 방해하는 차량에 연락처가 남겨져 있지 않은 경우나 사유지인지 도로인지 애매한 경우 판단을 위해 현장조사를 나서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런 민원을 도와주느라 긴급 출동 등 본연의 임무 수행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