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강소영 기자] 고성장기에 탄생한 중국의 벼락부자들이 전통 경제의 쇠퇴로 부와 명성을 잃고 있다. '아시아 최연소 부호', '검은 금의 왕자' 등 화려한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석탄 부호 헝딩실업의 셴양(鮮楊) 이사장이 대표적 사례다.
헝딩실업 이사장 셴양<사진=바이두> |
헝딩실업은 쓰촨성 최대 민영 석탄그룹이었지만 지난해 해외발행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해 부도위기를 겪었다. 은행 등 여러 곳에서 빌린 자금도 갚지 못했다. 채권자로부터 상환 유예를 받아 한 숨을 돌렸지만, 20일 초상은행이 대출금 원금과 이자를 갚지 않는 다는 이유로 광둥성 법원에 헝딩실업을 고발해 다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헝딩실업은 쓰촨성 최대 민영 석탄그룹으로, 2007년 석탄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사세가 급속히 확장됐다. 쓰촨 세관 부문 공무원 출신이었던 셴양은 2000년 자본금 110만위안(약 1억9000억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셴양이 사업을 시작한 2000년대는 중국 석탄산업의 최대 호황기다. 2001~2005년 중국의 석탄산업 성장률은 40%에 달했다. 특히 2008년부터는 석탄 가격이 급등하면서 석탄 관련 기업의 실적도 큰 폭으로 늘었다.
헝딩실업도 석탄 산업의 호황과 함께 승승장구했다. 2005년 회사 설립 5년 만에 헝딩실업은 쓰촨성 최대 민영 석탄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에는 홍콩시장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중국 본토 민영 기업으로는 첫 해외상장이었다.
셴양의 자산은 140억위안으로 껑충 뛰었고, 후룬 중국부호리스트에 이름을 처음 올리게 됐다. 당시 셴양의 자산 순위는 41위였다.
2008년에는 농산품및 사료 대기업 신시왕(新希望)그룹의 류융하오(劉永好) 가족과 건설사 훙다(宏達)그룹의 류창룽(劉滄龍)의 뒤를 이어 쓰촨성 3대 재벌이 됐다.
셴양이 공무원에서 백 억위안대 재벌이 되기까지 채 8년이 걸리지 않았다.
석탄 사업으로 일확천금을 얻은 그를 세간에서는 '검은 금의 왕자'라고 불렀다. 셴양은 중국 사회가 가장 주목하는 성공한 사업가가 됐지만, 정작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수많은 언론의 취재 요청에도 셴양은 언론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줄곧 꺼려왔다.
항간에는 그가 쓰촨성 부호의 아들이란 소문도 있었지만, 사실 그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사업가다. 1973년 출생한 그는 신장 158cm의 작은 체구의 평범함 공무원이었다. 그의 부친 역시 공무원 출신으로 셴양은 아주 부유하진 않았지만 안정적인 생활 환경에서 성장했다. 성인이 된 후 그 역시 공무원의 길을 걸으며 안정적 생활을 이어갔다.
셴양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고, 석탄 산업 성장의 기회를 포착해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됐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 최연소 부호', 포춘 선정 '중국 40세 이하 재계 엘리트 40인' 등 세계 각종 부호 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이후 선탄 산업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그에게도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직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던 중국의 여러 석탄 기업의 사업이 악화됐고, 헝딩실업의 사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한때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과 함께 '검은 황금'으로 불리던 석탄산업은 이제 중국의 대표적인 생산과잉 '문제'산업으로 전락했다. 중국 경제의 개혁 추진과 함께 구조조정 대상 1순위 산업으로 꼽히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셴양도 위기를 맞고 있다. 누구보다 화려한 수식어를 몰고 다니던 셴양은 빚 독촉에 시달리고 신세가 됐다. 시장은 셴양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할지 아니면 과거의 영예를 뒤로 하고 몰락한 부호로 불명예 퇴장할 지 주목하고 있다.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