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실적 고평가에 달러 강세 '역풍'…총체적 난국
[뉴스핌=김성수 기자] 연초 급락 장세를 딛고 5주간 상승했던 뉴욕 증시가 갑자기 급락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불길한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 지수가 지난달부터 랠리를 구가하면서 최근 연초 낙폭을 만회하기도 했지만, 시장 펀더멘털이 미약해 언제든지 고꾸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제까지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보면 겉보기에 평온해 보이는 뉴욕 증시가 실상은 ▲과매수 구간 진입 ▲달러 강세에 따른 기업 순익 둔화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폭락 등 각종 펀더멘털이 '총체적 난국' 상태로 풀이된다.
24일(현지시각) 알리안츠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수석 경제자문은 "미국 기업 등 시장의 펀더멘털이 약해지고 있다"며 "향후 몇 달간 증시가 5~10%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미국 실적 '뻥튀기'…주가 고평가
주요 기관들은 미국 기업들의 실적을 캐본 결과 주가가 고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는 S&P500지수 상장 기업들의 실질 순익이 3분기 연속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순익이 내리 3개분기 감소했던 것과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그로스인컴 리서치앤매니지먼트에 따르면 S&P500 기업들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7.6% 감소했고, 연간 기준으로는 12.1% 감소했다.
미국 S&P500기업들의 순익 실제치와 발표치 간의 괴리를 나타내는 그래프. 하늘색이 미국 기업들의 발표치이며 파란색이 미국 회계기준(GAAP)에 따라 재작성한 결과이다. <자료=S&P 다우존스 인덱스, 월스트리트저널(WSJ) 재인용> |
게다가 기업들이 보고한 실적도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BofA-메릴린치는 미국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회계기준(GAAP)에 맞춰 다시 작성할 경우 순익이 12.7% 감소한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보고한 순익 그대로 예상 주가순익배율(PER)을 계산하면 16.5배에 그치지만, 실제 정확한 순익으로 다시 계산하면 이 비율이 21.5배로 뛰어오르게 된다. 즉 예상 PER 기준으로 주가가 크게 고평가돼 있다는 것이다.
BofA-메릴린치는 "뉴욕 증시가 올 초에 급락 출발했지만, 지금 주가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며 "그만큼 하락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스티펠의 한스 올슨 투자전략 헤드도 미국 경제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실적 수치를 봐도 주요 기업의 실적은 5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다"며 "이런 시장에 기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수 기술분석 전문가들도 증시가 이제 과매수 구간에 진입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위든앤코의 마이클 퍼브스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S&P500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S&P500 SPDR ETF(종목코드: SPY)가 지난 6주 동안 13% 가량 급등하면서 과매수 영역에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S&P500지수가 1950포인트로 5% 하락하는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며 "이번주 연휴를 앞두고 투자자들이 단기적으로 시장 위험 헷지에 나설 것을 권한다"고 강조했다.
UBS의 기술분석 전문가 마이클 리스너와 마르크 뮬러도 S&P500지수가 2009년 이후 가장 극심한 과매수 상태라며 매도 타이밍이 가까워졌다고 진단했다.
◆ 달러 강세 '역풍'…실적 악화·에너지주 부실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주는 주요 범인은 '달러 강세'로 지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달러 강세는 기업 순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뉴욕 증시와는 역(-)의 상관관계를 보여왔다.
최근 달러 값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4월 금리인상 가능성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5거래일 연속 상승, 이번 주 들어 1% 넘게 올랐다.
최근 1년간 S&P500지수(노란색)와 달러인덱스(파란색) 추이. 달러 가치와 뉴욕 증시가 역(-)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블룸버그통신> |
일부 기업에서는 이미 달러 강세가 수익성 및 성장성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주요 스포츠매체 나이키는 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달러 강세가 매출 증가세에 타격을 입혔다고 설명했다.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에 의하면 올해 3월~7월까지 배송될 예정인 나이키 신발·의류 주문량은 연간 기준 12% 증가했는데, 달러 강세 효과를 제거할 경우 증가율이 17%로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강세는 특히 원자재 섹터에 위협 요소다. 금속 등 원자재 상품은 가격이 달러로 매겨져 달러 값이 오를 경우 가격이 비싸지고, 수요도 위축되기 때문이다.
여기다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 급락과 맞물리면서 에너지 섹터의 펀더멘털은 더 악화되고 있다.
웰스파고와 코메리카 등 미국 주요 은행에서는 에너지 섹터의 부실 여신이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펌 회사인 헤인즈앤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에너지 기업의 파산 건수는 51건에 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2009년 12월의 62건에 근접해졌다.
이는 미국 기업들의 평균 신용등급이 '정크 단계'로 낮아지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S&P는 미국 기업들의 평균 신용등급이 BB로, 투자 등급보다 2단계 낮다고 밝혔다. 이는 약 15년래 최저로, 지난 2009년 당시보다 악화된 수준이다.
S&P는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원자재 섹터의 신용등급이 대거 강등된 것이 현재의 낮은 신용등급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 자본시장에서 신용 사이클이 정점에 와 있어 기업들의 디폴트가 급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최근 미국 증시 변동성지수(VIX)가 최근 장기 추세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지나치게 낮은 구간을 횡보하고 있는 것도 불길하다는 진단이다. 이에 따라 투기세력들은 VIX가 다시 반등할 것으로 보고 베팅에 나섰다.
또 '부자아빠'로 이름을 날린 한 전문가는 자신의 14년 전 미국 증시 폭락 예고가 여전히 적중할 수 있다면서 다시 한 번 '고장난 시계' 전문가들이 시장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