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알화 올해 33% 절하, 여전히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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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연일 사상 최저치를 새로 쓰며 통화위기 불안감을 키우던 브라질 헤알화가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일단 진화된 모습이다. 하지만 깊어지는 경기침체 리스크를 깨끗이 씻어내기에는 중앙은행의 개입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연초 대비 통화가치 변동폭 <출처=WSJ마켓데이타그룹> |
모든 수단을 동원해 헤알 하락을 막을 것이며 총 371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기꺼이 풀겠다는 알렉산드레 톰비니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의 발언이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린 영향이다.
◆ 헤알화 과매도 영역 '패닉' 양상
크레디아리그콜의 마크 맥코믹 외환전략가는 "헤알화가 지나치게 과매도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중앙은행의 행보가 시장의 심리를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겠지만, 매도세가 지속될 경우 결국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반등의 기쁨도 잠시, 시장에서는 중앙은행의 구두 약속의 힘만 기대하기에는 브라질 경제를 둘러싼 전망이 지나치게 암울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빠르게 힘을 얻고 있다.
이날 가치 급반등에도 불구하고 헤알 가치는 연초 대비 32.7% 떨어진 상태로, 여전히 올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통화로 꼽히고 있다.
이미 브라질 중앙은행은 헤알화 추락을 억제하기 위해 일련의 정책을 써왔지만 추락을 막지 못했다. 이에 대해 라보뱅크의 크리스찬 로렌스 전략가는 "브라질이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이것이 환율에 반영되고 있다"면서 "중앙은행이 외환 스왑 입찰을 통해 크레딧라인을 열었지만 헤알화를 방어하지 못하자 '패닉' 양상을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중앙은행은 참고 전망 자료를 통해 경제 위축이 통화 약세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을 상쇄하고 남음이 있기 때문에 물가 전망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정책금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2016년 물가 전망은 당초 4.8%보다 크게 높은 5.3%로 제시됐다. 하지만 물가 전망과 목표치인 4.5%와 격차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기 때문에 14.25%에 달하는 정책금리를 당분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BBH)의 윈씬 신흥시장전략 담당 글로벌헤드는 "브라질 금융시장의 왜곡이 심화되면서 정책금리인 셀릭금리(selic rate)가 내년 3월까지 16.75%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 침체 신호 '곳곳에'
브라질 헤알화 지폐 <출처=Wikipedia> |
헤알화 약세로 달러화 부채가 많은 대형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는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순전히 헤알화 약세로만 부채가 지난 분기 3446억헤알에서 4558억헤알까지 치솟았다.
기업의 투자계획이나 거래가 지연되고 기업공개시장도 사실상 얼어붙었다.
브라지 현지 투자은행인 그린힐앤컴퍼니의 다니엘 와인스타인 대표는 뉴욕타임스(NYTimes)와 인터뷰에서 "불확실성과 변동성의 수준이 자산가격을 매기기 힘들 정도의 상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라질의 암울한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신호들이 잇따르고 있으며 브라질 시민들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또 한번의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품 수출국으로 최근 상품가격 약세에 직격타를 맞고 있는 브라질의 경기 침체를 보여주는 지표들은 한둘이 아니다.
지난달 브라질 실업률은 7.6%를 기록해 8개월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고, 물가상승률은 10% 가까이로 올라 가뜩이나 부족한 브라질 예산을 갉아먹고 있다.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브라질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B+'로 강등한 주요 이유도 바로 재정 악화 우려에 있다.
남미 최대 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및 비리 스캔들로 정권 지지율도 바닥인데다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들을 추진해야 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도 탄핵 위기에 몰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금리 인상 임박 전망도 브라질에서의 자금 이탈을 부추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날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메사추세츠 대학 연설에서 연내 금리 인상 의지를 다시 한 번 피력했다.
◆ 정치경제 전망 악화일로.. "환율에 반영 중"
대내외 악재들이 산재한 탓에 브라질 중앙은행은 이날 브라질 경제 성장률을 또 다시 하향 조정했다. 은행은 올해 브라질 경제가 2.7% 위축해 25년래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실시됐던 중앙은행 서베이에서는 올해와 내년 브라질 성장률이 각각 마이너스 2.26%와 마이너스 0.4%로 제시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 2.8%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브라질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과 환시 안정을 위해 금리를 14.25%까지 올렸지만 금리 인상의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헤알이 추가 약세를 보일 경우 브라질 기업들의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 대형 항공업체 린하스 에어리아스의 경우 달러표시 장기 채권을 약 15억달러 가량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환헤지를 걸어둔 액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환율 불안 탓에 린하스 에어리아스 주가는 이미 올 들어 75%가 급락한 상태다.
소시에테제네랄의 번드 버그 신흥시장전략 담당 이사는 "브라질 헤알은 현재 신흥시장 위기의 가장 취약한 고리"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날 중앙은행 구두개입으로 환율이 급락했지만 전망을 여전히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버그 이사는 "정치적 위기가 통제력을 잃을 경우 달러/헤알 환율은 5헤알 수준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환율이 올 연말 4.25헤알, 내년에는 4.50헤할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라틴아메리카 경제분석팀을 이끌고 있는 알베르토 M. 라모스 헤드도 "불행하게도 아직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시경제와 정치적 현실이 계속 악화되고 있고 환율이 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헤알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브라질 기업 가치는 저렴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해외투자자들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들어 기업 인수합병과 자산매각 거래는 모두 50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05건에 비해 크게 줄지 않았지만, 액면은 420억달러에서 277억달러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