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현경 기자] 최근 영화 ‘장수상회’ 관련 인터뷰에서 배우 윤여정(68)은 “나영석PD도 한 번 망해봐야 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잘 되고 있잖아. 한 번쯤은 망해봐야 내려놓을 줄도 알지”라며 독한 듯 애정 깃든 말을 남겼다.
2013년 1월 11년간 몸담았던 친정 KBS를 떠나 CJ E&M으로 자리를 옮긴 나영석PD(39)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tvN에서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그가 새 둥지를 트고 처음으로 선보인 예능프로그램은 ‘꽃보다 할배’였다. 평균 나이 70세를 웃도는 할배들과 '짐꾼' 이서진의 유럽 여행기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다. 예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인물들이 마주하는 여행에서의 예측 불가한 돌발 상황은 흥미를 일으켰다.
이를 시작으로 ‘꽃보다 00’ 속편들도 속속히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꽃보다 할배 in 스페인’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과 현재 방송 중인 ‘꽃보다 할배 in 그리스’까지 대박 행진이다. 더불어 강원도 정선에서 펼쳐지는 이서진·옥택연의 슬로우 라이프 리얼 버라이어티 ‘삼시 세끼’와 차승원·유해진·손호준의 만재도 생활을 담은 ‘삼시 세끼 어촌편’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강탈했다. 특히 ‘삼시세끼 어촌편’은 케이블 방송계의 최고 시청률의 한 획을 그었다. ‘삼시세끼 어촌편’ 5회는 무려 평균 시청률 14.2%(이하 닐슨 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 최고 순간 시청률은 16.3%까지 치솟았다.
이적 이후 금요일 밤 9시45분 시간대는 나영석의 쇼 타임이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내놓는 것을 보면 거의 ‘일 중독’ 수준이다. 그에게 워크 홀릭이 아니냐고 물으니 “제가 아니라 회사가 워크 홀릭이다”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운이 좋게 성과가 좋았다. 당연히 회사에서 원하는 퍼포먼스가 있어서 일을 연이어 맡고 있지만 이 일이 힘들면서도 재미가 있다. 사실 얼마 전 고민도 했다.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일하는 게 병이 아닌가 싶었다”라며 웃었다. 이어 그는 배우 윤여정이 건넨 독설 아닌 진심 어린 충고가 도움됐다고 말했다.
“(윤)여정 쌤이 ‘삼시 세끼’ 첫 촬영에서 ‘나PD도 한번 엎어져 봐야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너도 한 번 망하고 욕을 먹어봐야 된다. 그래야 네 어깨의 짐이 가벼워져서 새로운 것을 보여줄 힘이 생기지. 이렇게 계속 잘되기만 하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다 말라 죽는다’라고요. 그때가 마침 한창 힘들 때였어요.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기본은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거든요. 당시 여정 쌤의 충고는 위로가 됐죠. ‘나도 이젠 망해도 된다’가 아니라 ‘망해도 좋으니 재미있게 하자’는 생각으로 바뀌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되고요.”
그의 지치지 않는 힘이 통한 것일까. 나영석PD의 프로그램은 어느새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는 중국판으로 제작돼 현지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제는 아시아권을 비롯해 유럽·미국까지 총 10개국에 프로그램 포맷을 수출했다. 이는 국내에서 최다 국가에 수출한 기록이다. 무엇보다 미국 NBC에서 ‘꽃보다 할배’가 리메이크될 것으로 전해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예상 시기는 올해 하반기다. 미국에서 자신이 연출한 예능 프로그램이 선보여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눈 순간 나영석PD의 감정은 어땠을까.
“지난해 NBC 소속 프로듀서가 저를 찾아왔었어요. 그분이 ‘이런 게 진행 중이다’라며 기획서를 보여주더라고요. ‘이렇게 만들려는데 출연진은 비밀이다’라는 설명을 듣고 읽어보는데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어요. 영어로 막 쓰여 있는데 우리 프로그램인 거죠. 제 앞에서 자신들이 만들어낼 프로그램이 ‘꽃보다 할배’의 포맷이라고 말하는데 굉장히 뿌듯하기도 하고 감격스러웠어요. 그 순간에는 굉장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꽃보다 할배’뿐만이 아니다. ‘삼시 세끼’는 유럽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삼시 세끼’는 프랑스 칸에서 13일~16일까지 진행되는 방송 콘텐츠 마켓 밉티비(MIP TV)에 초대됐다. 현재 슬로우 라이프가 트렌드인 유럽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는 시선이다. 글로벌 콘텐츠 수출 전문가는 “해외에서 유기농 먹거리와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콘텐츠 중 예능형으로 만들어진 전례가 없다. 그래서 ‘삼시 세끼’는 유럽에서도 관심받을 만하다”고 기대했다. 이에 대해 나영석PD는 “‘삼시 세끼’는 한국적이라기보다 도시를 벗어나 느리게 사는 것, 그리고 다른 걱정은 내려놓고 오직 하루 세끼만 걱정하는 콘셉트다. 즉 인류의 보편적인 소재라 유럽에서도 공감할 수 있을 거란 의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시대가 연결해줬죠. 적극적으로 정보를 향유하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유럽과 미국, 전 세계와 연결되는 시대니까요. 아주 세세하게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유니버설한 소재는 언어가 달라도 맥락을 알아챌 수 있는 힘이 있거든요. 싱가포르에서 자막 없이 방영된 ‘꽃보다 할배’를 본 한 NBC 관계자는 ‘대충 음악만 들어도 웃겼다’고 하더라고요. 할아버지들의 꼰대 같은 모습이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누가봐도 낯설지 않은거죠. ‘삼시 세끼’도 마찬가지고요. ‘삼시 세끼’의 경우는 현대인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한국뿐만 아니라 현재 전 세계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잖아요. 굉장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고요. 지친 도시 생활에서 살짝 쉬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삼시 세끼’와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거예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나영석PD에게 현재 한국 콘텐츠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물론 아시아권에서는 한류가 강세다. 하지만 이 외의 해외 콘텐츠 시장에서는 대한민국의 입지가 큰 건 아니다. 소규모지만 ‘대한민국에서도 이 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구나’하는 인식 정도는 됐다”라고 말했다. 아시아권과 미국과 유럽까지 프로그램 포맷을 수출한 나영석PD, 그는 계속해서 세계 시장의 시선을 놓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수출을 한다고 해서 1억 천금을 안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지금은 소규모지만 점차 확대되어가는 상황인 거죠.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콘텐츠가 강세지만 미국과 유럽은 아직 먼 시장이니까요. 사실 명함을 들고 찾아다녀야 하는 개척 시장이죠. 그래서 미국과 유럽 마켓에서의 관심은 저희에게 더 기분 좋은 소식이기도 하고요. 저도 글로벌 시장에 관심이 있어요. 일본이나 중국 시장은 문화가 거의 비슷하고 한류가 강해서 이제는 한국 콘텐츠를 소재 구분 없이 다 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서구나 문화가 다른 시장은 다른 상황이에요. 그쪽에서도 제 프로그램이 관심을 끄는지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사진제공=CJ E&M]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