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한기진 기자] 요즘 금융시장에 딱 맞는 탈무드의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가 있다. 죽은 자의 영혼들이 모여 사는 섬이 있는데, 인간이 이 섬을 찾아오면 1년간 왕 노릇을 한다. 그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1년 후에 먹을 것도 없는 죽음의 섬으로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어느 한 노예가 바다를 건너다가 그만 폭풍을 만나 이 섬에 들어가는데, 그는 1년 뒤 쫓겨난 다는 것을 알고 현실을 즐기기보다 미래를 대비했다. 죽음의 섬에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꽃과 과일나무를 심고 밭도 일궜다. 1년 그 섬에 가봤더니 더는 죽음의 섬이 아닌 풍요로운 곳으로 바뀌었고, 그 노예는 여생을 더 행복하게 살았다.
탈무드는 불행한 일이 예고돼 있다면 그 일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미국 금리인상이 불행한 일인데, 우리나라 금융업계는 준비가 전혀 안돼 있는 것 같다. 증권가는 미 FOMC 회의가 있을 때마다, “금리인상은 아직은 멀었다”며 주식투자자를 애써 안심시키는 리포트가 넘치며 투기심리를 자극하려 한다. 의사결정은 투자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증권가는 외면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은행은 경제의 버팀목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정적인 경영을 해야 한다. 증시나 부동산시장과 달리 은행이 무너지면 경제위기가 온다.
미국 금리가 인상되면 외국 자본은 국내에서 철수해, 안전자산인 미국으로 이탈하게 된다. 또한 원화 값이 내려 외환시장에서 환차익 매력도 줄어들게 된다.
이럴 경우 한국은행은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를 2.00%에 묶어둘 수 없다. 조금이라도 올려서 외국 자금을 붙잡아야 한다. 인상 폭조차 미국이 금리를 얼마나 올리냐에 달렸다.
저금리에 취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다. 대출이자가 늘어나며 채무불이행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연체율 상승으로 은행 건전성이 악화한다. 대출원금을 못갚는 좀비기업은 끝내 무덤 속으로 가야 한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1100조원이 넘겼고 기준금리 하락 효과로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농협은행 등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10월과 11월 각각 6조9000억원, 12월 6조3000억원 등 매월 사상 최대폭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내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 금리인상은 해외채권 발행 시 조달비용 상승을 가져온다. 은행의 해외사업 비용이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국내 굴지의 모 은행은, 외화유동성 위기로 거의 문을 닫을 뻔한 일도 있었다.
미국 금리인상이 올해 안에 있고 그 파장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데도, 우리나라 은행들은 당장 먹고 살기에만 급급한 것 같다. 은행장들은 이를 모르지도 않을 텐데 올해 사업목표에는 대출, 순익 목표만 있을 뿐 위기플랜이 없다.
시중은행 모 임원은 “고객 중 거액자산가는 부동산을 정리해 현금 보유를 늘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유를 물어보면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부채를 못 갚아 부동산 등 자산이 싸게 시장에 나올 것이고, 그때 싸게 살려고 한다”면서 “은행도 금리인상의 경중으로 세 단계를 나눠 스트레스테스트를 해야 하는데 전혀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가 110만명이 넘어선 상황에서, 美 금리인상에 대한 플랜이 가동돼야 우리를 기다리는 섬이 죽음 대신 풍요로운 곳이 될 수 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