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 인정해도 불편한 속내, 무색(無色)은행되나"
[뉴스핌=노희준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의 보신주의 관행을 깨기위해 도입한 일종의 성적표인 '혁신성 평가'에 대한 은행권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평가지표가 일부 은행에는 불리하고 혁신성 평가를 잘 받으려다 은행의 특성이 무시되고 경영이 획일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자료=금융위> |
금융당국은 지난해 은행의 대출기능 혁신, 신성장기회 창출, 사회적 책임이행을 위해 혁신성 평가를 도입했다. 초점은 재무적 정보에 기초한 담보·보증 위주의 보수적 대출관행으로 창의와 아이디어 등 혁신기업 등에 대한 자금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을 타파하는 데 있었다.
세부적으로 기술금융 확산(TECH, 40점)는 기술금융 실적의 절대치(11점)와 비중(14점), 변동폭(5점), 역량(정성평가 10점) 부문으로 평가되고 보수적 금융관행 개선 분야는 관행혁신, 투융자 복합금융, 신성장동력 창출 평가 부문에서 접근된다.
특히 금융위는 혁신성 평가에서 상대평가제를 도입해 은행간 줄세우기에 나섰다. 건전성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지나친 보수적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은행간 경쟁과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 평가지표 공정성 논란· 일률적인 순서매기로 경영 획일성 초래 우려
금융권은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일단 평가지표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테크평가에서 전체 40점 중 기술금융의 실적 절대치(=규모)가 11점으로 높다는 점에서 결국 은행 자산규모에 따라 대출을 많이 해 줄 수 있는 대형은행이 유리한 게 아니냐는 물음표가 붙는다.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이에 대해 "절대치가 11점이라 작지는 않지만, 절대치 비중이 절대적이지는 않는다"며 "비중이나 변동폭으로 절대치를 상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표는 은행권과 공동으로 머리를 맞대 균형되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테크평가에서 국민은행(5위)은 기술금융의 절대치 순위는 높으나(3위) 여타 지표의 순위가 저조(5위)해 전체 순위가 하락했다. 반대로 하나(3위)·외환은행(4위)은 비중·변화폭에서 우수한 평가(1~2위)를 받아 절대치 순위(4~5위)보다 전체 순위가 상승했다. 절대치 순위가 전체 순위로 그대로 직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술금융을 중심으로 한 창조금융을 확산하기 위해 특정한 평가 잣대로 줄세우기를 하다보니 은행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을 어렵게 하고 나아가 경영의 획일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는 남는다.
가령 은행마다 특화하는 타켓 시장이 기업금융, 개인금융, 중소기업금융 등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혁신성 평가는 가계대출보다 중소기업 대출을 많이 할수록 좋은 평가를 받도록 설계됐다. 일종의 중소기업 대출 '쏠림 현상' 등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은행마다 특화된 곳이 있는데 평가결과를 보면 평가 계산식 자체가 우리에게는 불리한 것 같다"며 "향후에 평가지표에 대해 상의를 해서 조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혁신성평가 결과를 총이익 대비 인건비 비중과 함께 공개한 것을 두고도 혁신성 평가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성이 인정된다는 시각과 과도한 순서매기기라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김용범 국장은 "전적으로 소매금융만 하는 은행은 없다"며 "은행의 중요한 사회적 역할에는 좋은 기업에 대한 자금 중개기능을 하는 것이 있고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이에 대해 인센티비를 주고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혁신성 평가 결과를 단순 '줄세우기' 차원을 넘어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평가결과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활용방안 모색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달 13일 은행 혁신성평가 결과 분석 세미나를 열고 이후에도 관련 세미나를 정례화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은행의 혁신성 달성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상대평가를 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또다른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기술금융의 취지와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아무래도 평가를 받으니 부담을 받게 된다"면서 "각 시중은행에 자율적으로 맡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