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누나 팬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은 ‘진구 오빠’다. 백번 이해한다. 오빠라고 부르고 싶은, 아니 오빠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소년. 그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마의 16세에 꽃미남 배우 김수현(드라마 ‘해를 품는 달’), 박유천(드라마 ‘보고싶다’)의 아역을 도맡으며 ‘역변 없는’ 배우의 좋은 예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년 후,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소년’를 통해 김윤석, 조진웅, 장현성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더니 그해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 성인 배우를 능가하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엄마 아픈 거,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어”라고 울던 초등학교 2학년 휘찬이는(영화 ‘새드무비’)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굴도 마음도 반듯한 ‘진짜 배우’로 거듭났다.
선굵은 외모, 어른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강렬한 눈빛, (유재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연암반수처럼 내려가는 특유의 중저음을 지닌 배우 여진구(18)가 ‘미스리’로 돌아왔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신작 ‘내 심장을 쏴라’는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영화는 평온한 병원생활을 이어가던 모범환자 수명이 시한폭탄 같은 동갑내기 친구 승민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극중 여진구는 수명을 연기, 띠동갑 이민기와 함께 동갑내기 친구가 돼 청춘을 위로한다.
“요즘 많은 분이 수많은 틀에 갇혀 있잖아요. 제 친구들만 봐도 그래요. 정말 무표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죠. 보고 있으면 저게 열아홉의 표정이 맞나 싶을 정도예요. 저희는 지금 감정적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라 화났다가 기뻤다 해야 하는데 아무 표정이 없는 거예요. 그저 입시를 준비하는 기계 같죠. 이삼십대 형, 누나들도 마찬가지고요. 수많은 경쟁으로 현실에 급급하게 살고 있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잊고 지냈던 작은 꿈과 희망을 기억하고 때로는 현실에서 벗어나 웃었으면 하는 마음이죠.”
‘내 심장을 쏴라’에서 여진구가 연기한 수명은 미쳐서 갇힌 놈, 병원생활 6년 차 모범환자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가진 그는 소심한 성격에 가위 공포증까지 가지고 있는 인물. 그를 ‘미스리’라 부르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승민과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이자 수명을 연기한 실제 여진구와도 상반되는 캐릭터다.
“어려우면서도 끌렸어요. 사실 승민이란 배역은 저랑 많이 닮아서 친근한 느낌이 있었죠. 근데 수명은 감이 안 오는 거예요. 처음 시나리오 읽었을 때부터 이 생각을 했죠. 그리고 이게 가장 큰 끌림이자 어려움이었고요. 물론 외적인 부분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죠. 아무래도 소설 속 수명은 여성스러운 하얗고 여리여리한 느낌이잖아요. 그래서 노력을 하긴 했어요. 다이어트도 하고 옷도 일부러 크게 제작했죠(웃음). 내적으로 수명에 다가가는 과정에서는 승민의 대사들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여진구에게 영향을 준 대사 외에도 영화에는 그냥 놓치기 아까운,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답게 한없이 따뜻하고 교훈적이다. 승민의 대사인 “내 시간 속에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거, 그게 나한테 삶이고 사는 거다”도 그중 하나. 영화 속 대사 이야기를 이어가다 문득 배우 여진구가 온전히 자신일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일지 궁금해졌다. “좋아하다 보니까 뭐든 연기 쪽으로 먼저 생각이 난다”는 그이니 이번에도 ‘연기’를 답으로 내놓을지도.
“연기는 온전히 저로 보이면 안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온전히 그 작품 속 인물이 될 수 있는 시간이죠.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시간은 그냥 일상생활이 아닐까요. 아주 평범한 생활요. 그런데 아무래도 저는 그런 대사를 듣고 하면서 평범한 일상생활보다 매 순간 연기 쪽에 대입하게 되긴 했어요. 어쩄든 연기할 때 전 그 배역을 최대한 진실 되게 보여야 하고,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죠.”
아름다운 대사만큼이나 빛을 발한 여진구, 이민기의 연기 호흡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었다. 열아홉과 서른하나의 동갑내기 설정이라니,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더없이 파격적이고 걱정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스물다섯 청년으로 만난 두 사람은 동갑내기 친구로 완벽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줬다.
“(이)민기 형이랑은 정말 친구 같았어요. 장난치는 거 좋아하는 것부터 성격까지 비슷한 점이 많았죠.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아서 많이 놀랐어요. 연기, 영화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고요. 안 그래도 면회를 가려고 하는데(지난해 8월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를 통해 입소한 이민기는 현재 용산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생활을 대신하고 있다) 따로 신청해야 하는 거예요? 그냥 가서 보면 되는 건가? 깜짝 파티해줄까 봐요. 사서라니까 뭐 숨기고 갔다가 ‘책 좀 빌려주세요’ 이러는 거죠(웃음). 너무 짓궂은가? 자꾸 이야기하니까 더 보고싶네요.”
사실 인터뷰 내내 (이민기의 깜짝 파티 이야기를 제외하면) 여진구에게서 또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꽤 어른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의젓함으로 청춘을, 청춘이었던, 그리고 청춘이 될 이들을 위로한 열아홉 소년은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른이 돼서도 계속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어린 시절 막연했던 꿈이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란다.
“예전에는 여러 가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봤을 때 연기적으로 아쉬움이 안 남는 후회 없는 작품을 가지고 싶어요. 사실 전 제 연기에 만족하고 싶지 않아요. ‘이 정도면 괜찮잖아’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안 했으면 하죠. 그런 의미에서는 항상 아쉬움이 남았으면 좋겠고요. 그러다 보면 이 꿈을 못 이룰 수도 있겠지만(웃음), 그래도 끊임없이 도전해서 이뤄볼래요. 지금처럼 하고 싶은 연기 있으면 하고 새로운 건 도전해보면서요. 두려울지언정 피하지 않을 거예요.”
자신의 목표를 차분히 이어가던 그는 배우로서 책임감과 자신감, 자존심을 잃지 않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안주하지 않는, 모든 방면에서 도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10년 차 배우의 진지한 답변에 다소 엄숙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열아홉 소년의 꿈은 뭐냐고 물었다. 그제야 다시 아이 같은 미소를 띤 그가 내놓은 답은 다름 아닌 대학 입시, 그리고 운전면허증을 따고 싶다는 거였다.
“대학이 가장 큰 꿈이죠. 또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운전면허증 따는 거예요. 제가 알기로 올해 생일 지나면 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요. 매니저 형만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웃음) 가능하면 바로 면허증 따려고요. ‘화이’ 할 때는 직접 몰진 못하고 이론적으로 배우기만 했거든요. 운전 배워서 비밀 데이트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요? 어머, 정말 그런대요?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긴데(웃음)….”
“원하는 학과? 지금은 대학만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