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부담 덜어주기 위해 금리 격차 줄여야"
[뉴스핌=한기진 기자] 빚을 내 빚을 갚아왔던 메모리 반도체 제조장비업체인 B사는 최근 폐업의 위기에 처했다. 담보 여력이 바닥을 드러내 은행을 이용하기 힘들어졌다. 거래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겨우 숨이 붙어있게 됐는데 금리가 높고 만기도 짧다. 매출의 급격한 신장세가 없다면, 문을 닫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연은 이랬다. B사는 3년 전 투자했던 스마트 그리드 부품사업이 최근 판매가격 급락으로 200억원대 손실을 봤다. 그동안 사업비와 영업손실은 반도체 장비 판매 수익과 은행 대출로 메웠다.
B사는 토지, 건물, 기계장치 등 총 300억원대 유형자산이 있었다. 이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모두 220억원을 빌렸다. 금리도 낮은 편으로 3~4% 이자를 냈다. 그동안 기준금리도 내리는 추세여서 금융비용(이자 등)이 2011년 31억원, 2012년 11억원 2013년 10억원으로 줄었다.
◆ 부동산 담보 한계 달해… 높은 금리 신용대출 전환 증가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만 금융비용이 9억원으로 급증하며, 연말이면 20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회사는 예상한다. 거래 은행에서 담보 여력이 바닥났다고 보고, 신용대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영자금을 C 국책은행에서는 담보를 제시해서 4%대로, D시중은행에서는 담보 없이 6%대로 대출받았다. D 은행 관계자는 “오랫동안 거래해 온 고객사여서 신용대출로 전환해줬고 금리도 매우 낮게 책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B사처럼 중소기업의 신용대출 수요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부동산 담보 여력이 한계에 달하면서 신용 말고는 담보가 없어서 생긴 현상이다.
8개 주요 은행(국민, 우리, 신한, 하나, 농협, 외환, 씨티, SC은행)의 중소기업대출중 신용비중을 보면 지난 2013년12월말 38%에서 올해 상반기 45.9%로 늘었다. 2012년에는 41%, 2011년에는 45%였다. 그러나 지방은행을 포함한 은행권 전체로 보면 감소추세다.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은행권 전체의 중소기업 신용대출 비중은 2009년12월 48%에서 2013년 12월 42%로 떨어졌다.
이 같은 차이는 대형 은행들이 지방은행의 주요 고객인 중소기업을 집중 공략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신한은행의 경우 올 상반기 중소기업 신용대출 비중이 64%로 2013년 34%, 2012년 34%, 2011년 38%보다 크게 늘었다. 반면 광주은행은 2009년 52%에서 지난해 말 44%로 줄였다.
고경홍 IBK기업은행 기업컨설팅센터장은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상승추세여서 오른 만큼 대출을 더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담보 가치가 하락하고 경기마저 나빠 담보대출 한도가 차면서 신용대출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행인 점은 최근 저금리와 은행 간 대출 경쟁으로 신용대출 받기가 수월해졌다.
LCD 장비를 제조하는 중견기업 H사는 기존 신용대출 거래 은행을 산업은행으로 바꿨다. 금리가 5.45~5.63%로 기존 은행보다 0.5%포인트가량 싸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신용대출 규모가 35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이자 비용이 크게 준다. 이 회사는 담보대출이 900억원 가량 있는데, 이 대출을 만기연장하고 운영자금은 신용대출로 채우고 있어 금리에 대단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다만 거래은행을 자주 바꾸면 신용정보조회가 그만큼 증가해, 회사 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 “은행, 중소기업 신용대출 비중 확대해야”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신용대출비중이 담보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들어 중소기업의 신용대출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의 신용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함께 신용대출 비중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금리 격차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민 의원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제출받은 8개 주요은행(국민, 우리, 신한, 농협, 하나, 외환, 씨티, SC은행)의 2014년 기업대출 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들 은행의 대기업 대출에서 신용대출은 80.2%, 담보대출은 19.8%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담보대출이 54.1%, 신용대출이 45.9%를 차지했다.
8개 은행의 신규 기업대출은 총 146조 289억원이었으며, 신한은행(32조원) 국민은행(31조원) 우리은행(29조원) 농협은행(20조원) 하나은행(17조원) 외환은행(6조원) 씨티은행(4조원) SC은행(3조원) 순으로 신규 기업대출이 이뤄졌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