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엽 기자] 국내 최고의 수출 대기업 중 상당수가 하청업체의 영업이익률을 관리한다는 것은 오래된 상식이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통해 하청업체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지 못하게 하면서 동시에 회사가 망하지도 않을 '적당한' 수준의 영업이익을 챙겨준다.
그래서 많은 '을(乙)'들은, 수년간 매출액은 열 배로 증가해도 영업이익률은 감소하는 설움을 겪는다.
'갑(甲)'이 '을'의 이익률을 관리하는 부문이 또 있으니 바로 금융, 이 중에서도 높은 진입 장벽을 자랑하는 제1금융권이다.
은행이 많은 이익을 내면 '약탈적 금융'이란 비판이, 수익이 반토막 나면 '땅 짚고도 헤엄 못 쳤다'는 비아냥이 잇따른다.
마찬가지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기라도 하면 언론, 금융당국이 금리를 안 내리는 은행들을 나무란다. 그래도 안 되면 여당 대표까지 나선다.
은행은 그제야 마지못해 적당히 금리를 내려준다. '갑'의 힘자랑은 결국 '눈치 보는' 금융, '적당히 일하는' 금융사를 양산한다.
게다가 대부분 은행들에는 버젓이 민간 주주가 있다. 금리라는 것이 금융사들이 팔고 있는 상품의 가격이란 점을 생각하면 금리 인하 지시만큼 뻔뻔한 시장개입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한때나마 아시아 금융허브를 지향했던 우리나라 금융의 현주소다.
우려되는 것은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은행이 아니라 공고화되는 관치금융 그리고 우리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다. 관리받는 '공기업'에게 해외 진출을 독려하는 것은 난센스다.
또 관치금융이 심화할수록 은행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은행으로 키워줄 수 있는 리더보다는 외풍을 막아줄 수 있는 은행장을 원한다. 낙하산이 횡횡한 결과가 어떤지 우리는 KB금융 사태를 보면서 뼈저리게 체험했다.
물론 그렇다고 편하게 이자 마진을 챙기는 은행들을 방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시장원리에 근거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쪽에선 '금융 보신주의'를 질타하면서 국감 때면 은행들의 부실여신을 꾸짖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얼마 전 금융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대학 교수를 만났더니 대뜸 하는 말이 소매금융을 통신사에게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요금을 체납하는지 여부만으로도 그 고객의 신용도와 현금사정을 시중은행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게 소매금융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 금융서비스 가격은 하락하고 혜택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은행들은 고객유치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고 앞다퉈 자발적으로 대출금리를 내릴 것이다.
일만 터지면 부행장들을 소환하는 금융감독 대신 관치금융과 이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