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로법칙의 비밀'의 한 장면 [사진=위드라이언픽쳐스] |
영화 ‘제로법칙의 비밀’은 컴퓨터 천재 코언의 집착에 가까운 일상을 담은 SF드라마다. 연산 시스템 회사 맨컴에서 일하는 코언은 오직 삶의 의미를 깨우쳐줄 미지의 전화에 집착하며 남들과 담을 쌓고 지낸다. 전화를 받기 위해 재택근무를 원하던 그는 맨컴 회장의 ‘제로법칙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뜻을 이루지만 이번엔 일이 발목을 잡는다. 자신의 존재의미만을 찾아 헤매던 코언. 우연히 만난 매력만점 여성 베인슬리와 가까워지면서 점차 현실감각을 찾기 시작하는데….
테리 길리엄 감독의 ‘제로법칙의 비밀’은 독특한 화면과 전개가 호기심을 마구 자극하는 영화다. 일단 화면을 보면, 미래지향적이면서도 포근하고 고전적 느낌을 주는 독특한 배경이 일품이다. 삽화가 출신의 색채마술사 테리 길리엄이 창조해낸 영화 속 세상은 엄청난 공을 들인 흔적들로 가득하다. 특히 상상력에 기초한 다양한 소품이 정말 인상적이다.
캐스팅도 역대급이다. 크리스토프 왈츠와 맷 데이먼, 틸다 스윈튼에 ‘향수’의 벤 위쇼까지 가세해 팬들을 설레게 했다. 단, 배우들의 비중을 캐보면 허무하다. 극은 완전히 크리스토프 왈츠와 프랑스 배우 멜라니 티에리가 이끌며, 맷 데이먼과 벤 위쇼의 존재감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틸다 스윈튼은 화면으로만 등장한다. 특히 벤 위쇼의 분량은 요즘말로 ‘안습’일 지경. 단, ‘바스터즈’에서 전율의 연기력을 보여줬던 크리스토프 왈츠가 구축한 새로운 이미지를 볼 수 있으니 이 점은 기대해도 좋다.
단번에 눈길을 잡아끄는 화면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캐릭터 조합은 환상적이지만 영화가 품은 이야기엔 의문부호가 붙는다. 일단 너무 따분하다. 초감각적 화면과 개성만점 연기에 비하면 스토리에선 불만이 느껴진다. 전개도 불친절한 편이어서 몇 분만 한눈을 팔았다간 애써 짜 맞추던 시나리오가 산산조각나며 머릿속이 하얘진다.
재미있는 건 음악이 거의 부각되지 않는 ‘제로법칙의 비밀’에 라디오헤드의 명곡 ‘크립(creep)’이 등장한다는 것. 코언이 베인슬리의 19금 홈페이지에 접속할 때 등장하는 ‘크립’은 현실과 동떨어진 초라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동경하는 주인공의 심리와 딱 맞아 떨어진다. 가사 하나하나가 코언의 암울한 삶을 읊조리는 이 곡은 트란 안 훙 감독의 ‘씨클로’에선 분위기 상 양조위와 무척 잘 어울렸다. 14일 개봉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