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희준 기자]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이다. 3000억원 규모의 KT ENS 협력업체 사기대출에 금융감독원 간부가 연루된 의혹이 불거지자 떠오른 생각이다.
금감원은 19일 KT ENS 대출사기에 자본시장조사1국 김 모 팀장이 연루돼 있다고 공식 발표해 충격을 줬다.
김 팀장은 2005년부터 KT ENS의 협력업체 중앙TNC 서모 대표 등과 지인관계를 유지해왔고, KT ENS 관련 검사 실시 여부 등을 서 대표에게 알려준 혐의를 받고 있다. 도둑을 감시해야 할 존재가 도둑에게 도주로를 열어준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김 팀장은 2008년경에는 서 대표가 인수한 농장 지분 30%를 무상으로 제공 받고, 필리핀 등지로 골프여행도 다녀온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금감원 직원이 조직적으로 범죄에 포섭됐을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김 팀장은 현재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 친구인 서 모 대표에게 당국의 조사여부에 대한 문의를 받고 관련 사실을 알려줬지만, 지인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알려주는 차원이었을 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일단 직원 개인의 일탈로 선을 긋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추가 금감원 내부 직원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협력업체에 대출을 해준 은행 등 금융기관에 김 팀장이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요새 금융회사가 압력을 행사한다고 듣겠느냐"며 "팀장 보직을 단지도 1년밖에는 안 됐다"고 앞의 관계자는 말했다.
하지만 김 팀장은 현재까지 단 차례 소환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추가 수사 이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 역시 금감원 윗선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금융기관은 대규모의 돈을 만지는 기관이고, 그 금융기관을 감독, 관리하는 금감원은 언제나 거액의 돈의 흐름과 다양한 사기사건의 포섭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실제 금감원 직원이 비리 사건에 연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때에도 금감원 직원들이 저축은행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고 부실을 눈감은 것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금감원을 깜짝 방문해 격노하고 여야 의원들도 나타나 금융당국을 질타하는 등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쳤다. 금감원은 이후 여러 쇄신 노력을 통해 환골탈태했다.
하지만 최근 동양그룹 CP 사태에서의 부실 검사 논란과 카드3사 정보 유출 사태에 이어 직접적인 사기 범죄에 금감원 직원의 연루 혐의가 불거지자 금감원이 그 시절로 회귀하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하루빨리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조직에 대한 기강을 세우지 않는다면, 또다른 제2, 3의 김 팀장이 나올 수 있다. 근묵자흑의 교훈이다.
자정 노력이 시원치 않으면, 저축은행 사태 때의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언제 금감원에 출타할지 모른다. 그 이후의 일은 너무나 뻔하다. 기회는 많지 않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