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뉴욕타임스(NYT)가 쓴 표현이나 받아쓰고, 당신이 그러고도 국제부 기자입니까?"
순간적인 분노가 일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골드만삭스 한국 지사 임원과의 전화 통화를 이어갔다.
"NYT가 썼더래도 그것이 적확한 표현이고 써줄 만하다고 생각되면 인용해서 보도할 수가 있는 겁니다. 골드만삭스가 정부와 연계가 있다는 점은 NYT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이렇게 반박했지만 골드만삭스 임원은 계속 같은 논리로 공격해 왔고 시간이 걸렸지만 예의를 갖춰 마무리한 채 전화를 끊었다.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NYT는 골드만삭스과 정부와의 커넥션을 공공연히 일컫는 '거번먼트 삭스(Government Sachs: Goldman Sachs+ Government로 만든 조어)'란 표현을 써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골드만삭스 인사들이 정부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혹은 정부 일을 하던 인사들이 골드만삭스와 연결돼 있는지에 대한 기사를 썼고, 국제부 기자였던 나는 그 기사를 인용해 썼더랬다.
그랬더니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골드만삭스 한국 지사 임원이 전화해 왔고 이런 통화가 전개됐던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나도 화가 났는데,한국의 국제부 기자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이 "NYT가 쓴 표현을 왜 그대로 갖다 쓰냐"는 식으로 모욕감을 준 것, 그리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처럼 골드만삭스와 정부와의 '끈끈한' 관계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인데 마치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는 점에서였다.
골드만삭스뿐이랴. 월가는 대통령 선거가 있으면 공개적으로 공화당이나 민주당 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을 골라 줄을 선다. 그리고 아낌없이 돈을 지원한다. 원하던 정권이 들어서지 않더래도 관계를 잘 맺는다.
금융위기의 시발점을 월가와 정부와의 커넥션으로 보고 풀어간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잡> 포스터. |
결국은 전 세계를 위기와 침체에 빠뜨린 미국의 금융산업은 이렇게 정부와 은밀한 관계 속에서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물밑 지원을 얻어 성장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결국 위험한 파생상품의 향연으로 이어졌고 잘 흘러갈 것 같던 그 고리는 어느 순간 굉음을 내고 터졌다. 그게 금융위기다.
이렇게 관계를 맺은 인사들은 월가와 정부를 오간다. 정부에서 나오면 월가에서 한 자리를 꿰차는 전관예우(前官禮遇)는 너무 당연했다.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장관을 한 로버트 루빈은 씨티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레이건 행정부 때 재무장관을 한 로널드 리건은 메릴린치 출신.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Fed) 전 의장은 체이스맨해튼 출신.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재무장관을 한 존 스노는 사모펀드 서버러스 회장이다.
그리고 금융위기 때 그 '월가와의 커넥션'이 '월가에 대한 깊은 이해'로 포장돼(물론 당시에 필요한 부분이긴 했다) 오바마 행정부 1기 재무장관에 올랐던 티모시 가이트너는 지난 주말 사모펀드 워버그 핀커스 전략담당 대표로 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참으로 징한 커넥션이란 생각이 들었다.
티모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출처=월스트리트저널) |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이나 루빈 전 장관처럼 월가에 오래 몸담은 이가 아니라 오히려 공직에 더 오래 몸담았다는 점은 다소 다르다. 하지만 NYT도 16일자에서 지적했듯 '재무장관을 했던 사람이 관직을 떠나면 월가의 높은 자리에 올랐던 전철'을 밟았다는 데선 매 한 가지다.
한국에서도 이런 종류의 기시감(Déjà Vu)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고위 관료들이 정부를 떠나면 금융권보다 로펌(법무법인)으로들 간다.
국정감사나 언론 보도를 통해 이런 것들이 무수히 지적돼 왔지만 끊기지 않는 커넥션이다. 김앤장이 이헌재 전 경제 부총리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많은 전직 관료들을 모셔갔다. 김앤장 전현직 고문을 다 따져보자면 고위 관료들이 하도 많아 무슨 모임이라도 가져야 할 듯 보인다.
김앤장은 우리나라가 흔들릴 때 외환은행을 샀다가 파는 과정에서 '헐값 매각' '먹튀'논란을 일게 한 사모펀드 론스타와도 관계가 있다. 바로 론스타의 법률자문사로 있었던 것. 이 과정에서 이헌재 전 부총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에 대한 의혹이 있다. 김앤장은 그밖에도 LG카드, 대우건설 등 초대형 인수합병(M&A)을 싹쓸이 하다시피 맡아 많은 이문을 남긴 곳. 이런 일들이 원활하게 되기 위해 전현직 관료와의 관계를 이용하는지에 대해선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관계가 없다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업무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기에 이런 관계를 끊기 위한 규제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어느새 묻혀 버리곤 한다. 공직자윤리법은 개정되면서 4급 이상의 공직자가 대형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에 취업하면 심사를 받도록 했지만 여기서 탈락한 사람은 없다.
판검사들이 퇴직 당시 근무하던 법원과 경찰청 사건을 1년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전관예우금지법'이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다. 법무법인에 들어가 개인 이름이 아니라 법인 이름으로 활동하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직 공직자의 취업을 일정 기간 제한하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의 조속한 입법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어느새 유야무야되고 있다.
"돈에 윤리가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답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관료들에겐 그 직책에 있었다는 이유로 요구되는 책임감이나 윤리는 분명히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 사모펀드들에 모여있는 전직 관료들, 가이트너뿐만이 아니다. 사모펀드와 관련한 규제가 더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고 무조건 이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 입장에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걸 돕는 전직 관료들이라니. <인사이드잡> 후속편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