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현금유보율 사상최대…“낙수효과 크지 않아”
[뉴스핌=김민정 기자] ‘증세없는 복지’를 내세우고 있는 박근혜정부가 법인세 인상 논의는 현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긋고 있다. 법인세를 인상하면 기업 부담이 가중돼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법인세율 인상을 주장하는 측에선 낙수효과를 맹신했던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법인세율 인상과 관련해 “경제부담을 고려할 때 세율인상을 통한 증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의 ‘법인세율 인상 불가론’의 가장 큰 근거는 경제활성화다. 미국의 재정위기나 양적완화 축소 등 대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률을 회복하기 위해 기업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법인들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법인세 부담 비중이 높다는 점도 정부가 법인세율 인상을 꺼리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법인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기준 3.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9%보다 높다.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국세세입예산안에 따르면 법인세는 올해 대비 0.1% 증가하는데 물가상승률(2%대중반)을 감안하면 사실상 감소한다. (표=기획재정부) |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인세 인하에 따른 경제활성화 효과가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국내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들의 유보율은 지난해 말 기준 1441.7%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기업들이 갖고 있는 돈을 투자에 사용하지 않고 곳간을 채우고 있다는 의미다.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가 대기업 투자 확대로 인한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 즉 낙수효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세수를 줄이는 대신 낙수효과를 기대했었는데 이미 그 정책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밝혀진 것 같다”며 “재정건전성을 지키면서도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증세 가능성을 열어둬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팀 국장은 “최근 관련 연구에 따르면 법인세를 인하해도 실질 기업 투자는 증가하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대기업에 혜택만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법인세가 인하됐어도 대기업 현금유보액이 사상최대를 기록하는 등 투자는 늘리지 않았다”며 “(법인세 인하와 같은) 대기업의 문제 제기는 본인들이 계속해서 기득권이나 특혜를 누리고자 하는 논리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계투자성향이 0.3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낙수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빈번히 제기된다. 한계투자성향이 0.3이라는 것은 기업이 1만원을 추가로 벌면 3000원을 투자한다는 의미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낙수효과와 관련해 “한계투자성향이 0.3 정도인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법인세수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법인의 소득 비중 역시 크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더구나 선진국의 경우 사회보장기여금으로 법인이 지출하는 비중도 크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이 역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유찬 교수는 “1982년에 법인세 과세표준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였는데 2011년에는 18.4%로 4배 이상 늘었다”며 “매년 18.9% 정도 법인의 소득이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GDP 증가 11.5%와 비교하면 7.4%p(포인트)나 높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과세표준이 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더 중요한 것은 실효세율인데 명목세율과 실효세율은 OECD 국가들에서 10% 정도 차이 나는데 우리나라는 25% 정도”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김민정 기자 (mj722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