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강소연 기자] 연기 경력 28년. 그간 해온 작품은 40개를 훌쩍 넘겼고 만난 기자만 수십 명이다. 하지만 이번엔 확실히 기분이 다르다.
첫 번째 연출작 ‘톱스타’를 들고 충무로에 혜성처럼(?) 등장한 감독 박중훈(47)과 마주했다. 징크스 때문에 깎지 못했던 수염은 어느새 그의 얼굴에 익숙하게 자리해 있었다. 아직은 감독이란 호칭이 낯설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감독 포스가 흘러나왔다. 물론 데뷔작 개봉을 앞둔 여느 신인감독처럼 초조함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나 특유의 유쾌함만큼은 그대로였다.
“부담감 때문에 열흘 정도 못 잤어요. 수십억짜리에 몇백 명을 참여시켜 이렇게 일을 저질렀으니 미치겠습니다(웃음). 이렇게 약한 놈인가 싶어요. 배우 때는 약간의 긴장뿐이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초조하네요. 물론 결과를 받아들이는 건 괴롭지 않아요. 그간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훈련이 됐으니까요. 근데 결과가 오기 전 지금이 너무 긴장되죠. 얼굴은 전혀 초조해 보이지 않죠? 난 늘 이게 문제야(웃음).”
박중훈의 감독 데뷔작 ‘톱스타’는 화려한 연예계의 감춰진 이면을 들춘 작품이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연예계를 지켜본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 그릴 수 있는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했다. 여기에 각본, 제작, 감독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정성껏, 또 조심스럽게 감독 박중훈의 필모그래피를 써내려갔다.
“세상에 이야기를 던지고 싶다고 느낀 건 마흔 언저리였어요. 감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5년쯤 됐고요. 막연하게 이야기를 쓴 건 3년 전쯤이죠. 사실 배우 시절에는 시나리오 작업하는 데 왜 저렇게 오래 걸리나 싶었어요. 막상 해보니 진짜 그렇게 되더라고요(웃음). 시나리오 쓸 때는 매일 절벽 앞에 선 기분이었죠. 그 과정에서 제 능력의 한계를 봤어요. 영화 투자를 받고 캐스팅 진행할 때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했죠. 체력적으로는 힘들어도 촬영할 때가 제일 편했어요. 오랜 시간 제가 생각한 걸 표현하면 됐으니까요.”
박중훈이 봐온 연예계의 이면은 그의 영화 속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다. 톱스타가 받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여느 작품보다 화려하지만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모습은 연민이 들 정도로 초라하다. 박중훈이 그간 겪어온 연예계가 그랬다. 그는 톱스타들이 사는 세상, 연예계를 축구라 칭했다.
“보통 이쪽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야망, 나쁘게 말하면 욕망이 커요. 연예인은 자신을 상품화시키는 거죠. 사실 잘될 확률이 낮잖아요. 그럼에도 인생을 던지는 거죠. 그러니 그 안에는 얼마나 큰 욕망이 있겠어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연예계는 축구 같아요. 어떤 축구인이 그러더라고요. 축구는 야만인의 신사운동이라고요. 축구는 굉장히 야성이 넘치는 경긴데 룰이 있고 상대방을 다치게 하면 안 되죠. 하지만 격투기보다 훨씬 야성이 넘치는 운동이라 보거든요. 연예계가 그런 곳이 아닌가 싶어요.”
박중훈의 감독 데뷔작을 평하자면 ‘예상 밖’이다. 감독 박중훈이란 타이틀을 빼고 보더라도 이 정도면 합격점이다. 그러나 그는 차기작 준비에 대해 말을 아꼈다. 성공만이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이곳의 생리를 잘 알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감독 대신 배우 모습이라도 보여달란 요청에 “누가 저를 쓰겠냐”며 웃었다. 감독 박중훈은 도전적인 신인이었지만 배우 박중훈은 여전히 자신을 돌이켜 볼 줄 아는 베테랑이었다.
“영화 ‘체포왕’을 찍을 때 스스로 ‘답습하고 있다. 새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그런데 보는 사람은 얼마나 식상했겠어요? 지금은 배우로서 새 작품을 만나는 게 작품을 덜 한 배우보다 확률이 낮죠. 웬만해서는 관객이 새로운 느낌이 갖기 어려워요. 제가 신뢰감을 주는 배우일지라도 핫하지는 않잖아요. 상업적인 현실에서 핫한 영화에 단독 주연으로 섭외가 올 확률은 낮죠. 그러니 저를 배우로 기용하려고 할 때 부담을 느끼지 않겠어요? 물론 극복이 되는 작품이 있다면 해야죠. 박중훈이란 배우가 필요하다고 의뢰가 오고 저 또한 새롭게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요. 쉽게 만날 수는 없을지라도 그런 작품이 있으면 얼마든지 기쁘게 연기를 할 겁니다(웃음).”
제가 생각하는 행복이요? 박중훈 감독이 이번 영화로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행복과 성공. 그는 행복의 가장 큰 조건을 ‘관계’라 했다. 오랜만에 받은 친구의 전화에 혹시 내가 까칠하게 대한 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다는 박중훈 다운 대답이었다. “저는 가장 큰 행복의 조건은 관계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구와 관계요. 관계가 좋아야 가장 행복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집을 살 때 일반적인 조건은 교통, 가격, 역세권, 주위 환경 등이죠. 그러나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잖아요. 여기서 무엇이 상위에 있나 생각하고 집을 고르죠. 행복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돈, 명예, 건강까지 조건이 많아요. 하지만 가장 큰 조건은 관계와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죠. 그래서 영화에서도 태식(엄태웅)에게 관계에서 고립을 형벌로 줬어요. 저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은 사람도 봤고,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 누구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도 많이 봤어요. 하지만 행복은 관계에서 오더라고요. 사실 저도 이삼십대는 성취하려고만 했죠. 성공만 보다 보니까 남에 대해 배려를 안 했어요. 영화에도 그런 마음을 담았어요. 어떻게 보면 태식도, 원준(김민준)도 그때의 제 얼굴이겠죠?”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