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학선 기자> |
"쉽게 오지 않을 기회란 걸 알기에 더 악착같이 할 수밖에 없었죠"
안효진 교보증권 고객자산운용본부 신탁팀장 얘기다. 지난 1년 여 전쟁같던 날들을 겪고 난 안 팀장이 이제는 추억인 양 미소와 더불어 이 같이 말했다.
지난해 3월 그가 처음 교보증권에 발을 디뎠을 때 신탁자산 규모는 1조원 가량이었다. 현재는 12조원으로 1년새 무려 11조원이 늘었다. 신탁자산 규모로 업계 17위였던 교보증권은 단숨에 3위까지 뛰어 올랐다.
안 팀장은 "중소형사인데다 여자라 처음엔 힘들었지만 조금씩 돈이 들어와 5조원 정도 되니까 그 때부터는 돈이 먼저 나를 찾더라"며 "초반에 회사 내 금융상품 관련 부서장들을 불러 회의를 시도했는데 다행히 잘 따라줘서 결국 윈-윈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교보증권으로 옮기기 전 모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5년 간 일했다. 그러다 출산 휴가를 다녀오니 리테일 부서로 발령이 나 있었다. 펀드매니저에게 리테일로 가라는 건 그만두라는 뜻이란 걸 잘 아는 그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소송까지 불사할 생각을 했었다. 같이 일하던 팀장이 타사로 옮기면서 안 팀장을 데려가려 했으나 그 마저도 여자란 이유로 거절당했다.
유리천장에 막혀 난데없이 인력 시장으로 내 몰린 그를 발견한 사람은 이기헌 교보증권 고객자산운용본부장(상무)였다. 이 상무는 누가 뺏어갈까 냉큼 데려왔고, 과장 직위의 그에게 신탁팀 부서장을 맡겨 버렸다.
안 팀장은 "위에서 자꾸 간섭하면 템포가 흐트러지는데, 이 상무님은 전혀 관여하지 않으신다"며 "문득문득 불안할 때마다 아낌없이 조언해 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쓸데없는 청탁 같은 것들도 철저히 막아 주신다"고 말했다.
◆ "능력 시대, 좋은 선례 남기고파"
매사 자신만만하고 당차 보이는 안효진 팀장도 처음 발령 났을 때는 걱정과 부담이 적지 않았다. 지금의 모습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불면증까지 겪기도 했다는 토로다.
안 팀장은 "ELT 전담으로 왔는데 채권운용역이 나가면서 겸직하게 됐다"며 "3월에 와서 9월에 팀장을 달았는데, 팀장 발령 소식을 8월 초에 미리 알고는 한 달 동안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면서 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고 말했다.
고민과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고 난 지금은 어떨까.
"밖으로는 시기와 질투가 많아진 걸 보고 유명세를 실감한다"며 "내부적으로는 회사 내에서 팀의 위상이 올라갔다"고 그는 얘기했다.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사회적 약자랄 수 있는 여성들 특히 직장인 여성들에게 하나의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안 팀장은 "현재 우리 신탁팀 총 10명 가운데 나를 포함해 6명이 여자"라며 "우리가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하나 덧붙인다면, 보다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것.
"내가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하다 보니 이게 내 옷이 맞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크게 일해 보고 싶은 생각이 슬쩍슬쩍 들기도 한다"며 수줍은 듯 미소를 머금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