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S 정보 왜곡 제공 파문 봉합 난망
[뉴스핌=이강혁 기자] "임원 한명 해임하는 걸로 사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을까요. 경영진과 이사회의 갈등이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최고경영자의 거취 문제에도 여파가 미칠 수 있겠죠."
금융권의 한 인사는 18일 KB금융지주가 박동창 전략담당 부사장(CSO)의 보직 해임을 결정하자 이같이 걱정했다. 단순한 사견이라고 전제를 달았지만,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 추진 과정에서부터 대립의 골이 깊어진 경영진과 이사회 관계가 봉합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 인사의 의견처럼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어윤대 KB금융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의 거취와도 연관짓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화두와 인사관 만으로도 어 회장 등의 거취가 불편한 상황인데 내부 갈등까지 지속되면서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고 보는 것이다.
KB금융은 4월 중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회장 후보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위원회에는 사외이사 9명 전원이 속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아직 공모방식으로 할지 추천방식으로 할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어 회장이 연임하기는 사실상 어렵지 않겠냐는 시선이 강하게 받아들여진다.
임영록 KB금융 사장과 민병덕 KB국민은행장도 어 회장과 함께 오는 7월이 임기만료다. 이들 역시 이번 파장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서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KB금융은 이날 오전 명동 본사에서 개최된 임시이사회에서 박 부사장의 보직 해임을 결정했다. 어 회장은 이사회에서 "미국의 주총안건 분석기관인 ISS측에 왜곡된 개인의사를 전달해 주주들의 혼란과 주주총회 진행에 차질을 야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 부사장을 즉각 보직 해임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박 부사장은 이날부터 회사 업무에 대한 접촉 및 수행이 제한된다. KB금융은 박 부사장에 대한 징계 여부와 수위는 이후 회사차원의 조사 결과를 보고 결정키로 했다.
박 부사장은 어 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를 지휘했다. 하지만 인수가 이사회의 반대로 무산되자 이경제 이사회의장 등 일부 이사의 재선임을 막기 위해 ISS에 왜곡된 정보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징계 위기에 몰렸다.
앞서 KB금융 이사회와 경영진은 지난 14일 임시이사회에서 ISS의 보고서 가운데 일부가 왜곡 과장됐다는 데 의견을 함께 하고, 왜곡된 보고서가 나오게 된 경위를 조사해 필요한 경우 후속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ISS는 11일 'KB금융지주 2013년 정기주총 안건 분석보고서'에서 "KB금융의 ING 한국법인 인수 무산은 일부 사외이사의 반대 때문"이라며 "정부 측 사외이사들로 인해 KB금융의 리더십과 독립성에 중대한 하자가 생긴 만큼 이경재(전 한국은행 감사), 배재욱(전 대통령 사정비서관), 김영과(전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사외이사 3명의 선임을 반대하라"고 권고해 파장을 일으켰다.
KB금융 이사회는 이날, 지난 14일 이사회가 경영진에 요구한 ISS보고서 관련 조치 사항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어 회장은 "ISS 주장 가운데 왜곡 과장된 부분을 적극 해명하는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그 결과 오해가 상당 부분 해소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경영진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서는 어 회장 등 경영진과 이사회의 갈등이 제대로 봉합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크다. 박 부사장의 해임으로 가뜩이나 좁아진 어 회장의 내부 입지가 더욱 흔들리게 된데다, 술자리 파문 이후 어 회장과 이사회의 불편한 기류가 여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어 회장은 ING생명 인수와 관련, 지난해 11월 국민은행 중국현지법인 개소식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 술자리에서 사외이사와 고위 임원 등에게 술잔을 깨고 고성을 지른 것으로 알려져 금융당국이 경위서까지 받았던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어 회장을 비롯한 KB금융 최고경영진들이 이사회를 배제하고 경영입지를 공공히 하기 어렵다"면서 "연임은 물론 잔여 임기에 대해서도 고민스러운 상황에 놓였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이번 KB금융 사태가 어 회장을 포함한 금융지주사 수장의 연쇄 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그 파장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