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업체 타이탄 CEO "프랑스인은 세시간밖에 일 안해"..CGT "미쳤다" 맹비난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프랑스법과 관례를 따르긴 쉽지 않은 모양이다. 특히 외국 기업들이 프랑스에서 사업을 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상황인 듯 보인다.
지난해 말 프랑스 정부는 세계 최대 철강사 아르셀로 미탈과 한 판 붙었다. 아르노 몽트부르 프랑스 산업부 장관은 아르셀로 미탈이 인력을 줄이고 공장을 폐쇄키로 한 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공갈 협박'이라며 국유화 가능성을 갖고 '협박'했다. 아르셀로 미탈이 꼬리를 내리는 것으로 상황은 무마됐다.
이번엔 프랑스의 친노조 방향성, 그리고 노동자들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다소 과격한 비판을 하고 나선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프랑스 노조 및 정부가 맞붙었다.
주인공들은 타이어 업체 타이탄 인터내셔널의 모리스 테일러 CEO와 아르노 몽트부르 장관, 그리고 프랑스 최대 노동조합 연합조직인 노동자총연맹(Confederation Generale du Travail, CGT)이다.
◇ 타이탄 CEO "바보로 아는 겁니까?"..프랑스 정부와 노조에 '맹공'
상황은 지난해 굿이어 타이어 & 러버가 프랑스 북부 아미엥(Amiens)에 갖고 있던 타이어 공장을 타이탄에 넘기려 한데서부터 시작된다. 굿이어는 수익을 내지 못한 이 공장을 타이탄에 넘기고자 했다. 굿이어가 처음부터 매각을 최선의 방편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다. 노동시간을 늘려 농업용 기기와 자동차에 대한 타이어 생산을 크게 늘려보자고 노조에 제안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를 거절했고 경영진은 420명을 자르겠다고 나섰다. 노조는 회사의 해고가 부당하다며 소송으로 맞섰다.
프랑스 아미엥에 있는 굿이어 공장(출처=WSJ) |
테일러 CEO는 수차례 아미엥 공장을 찾아 노동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정리하기로 한 인원 절반의 고용을 2년간 보장하는 안도 제시해봤으나 7년을 제시하는 CGT로부터 싸늘한 반응만 얻었다.
상황이 진척되지 않자 지난해 9월 타이탄은 인수 계획을 거둬들였다. "프랑스 사회 분위기는 너무 무겁다"는 언급과 함께. 그러자 당장 대거 실업자가 생기게 생겼고 외국 기업들의 프랑스 진출도 점차 줄어들 것을 우려한 몽트부르 장관이 개입했다. CGT에 "타이탄의 제안을 받아들여 달라"고 설득한 것.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 했지만 굿이어가 공장폐쇄 결정을 내리면서 문제는 심각해졌다.
모리스 테일러 미 타이탄 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CEO)(출처=WSJ) |
20일(현지시간)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에는 테일러 CEO가 작성일이 지난 8일로 된 몽트부르 장관에게 답한 서한이 실렸다. 워낙 거친 스타일로 유명한 테일러 CEO는 "장관님은 타이탄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안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바보로 생각하는겁니까"(How stupid do you think we are?)"라고 직설적으로 발언했다.
그는 "프랑스 노동자들은 임금은 많이 받아 챙기면서 하루 세 시간밖에 일하지 않습니다. 쉬느라 한 시간, 밥 먹느라 한 시간, 그리고 수다떠느라 3시간을 보낸 뒤 3시간만 일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래서 프랑스 노조 면전에서 이에 대해 말했더니 그들은 '그게 프랑스 식!'이라고 대꾸했습니다"라고 했다.
몽트부르 장관도 이에 질세라 곧바로 답변을 내놨다. "테일러 CEO의 언급은 지나치며 모욕적"이라면서 "프랑스에 대한 전적인 무지"라고 했다. 그런데 레제코가 앞뒤 말을 잘라 웹 사이트와 방송을 통해 "선동적이다(Incendiary)!" "모욕적이다" 등의 표현으로 보도하면서 프랑스 전역이 더 들썩거리고 있다. 프랑스 네티즌들은 테일러 CEO의 발언에 대해 '약탈적인(predatory) 미국식 기업 문화를 보여준다"며 맹비난하고 나섰고 CGT도 "테일러 CEO는 정신나간 사람"이라고까지 했다.
◇ 실업률 제한 고육책.."노동개혁 없이는 그리스 꼴 날 것" 경고도
프랑스의 법정 노동시간은 주 35시간. 2011년을 기준으로 실제 노동시간은 39.5시간인 것으로 조사됐긴 하지만 이는 유로존 평균(40.4시간)보다 적다. 그래도 프랑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생산성으론 상위에 랭크되고 있는 나라다.
최근 파리 본사에서 공장폐쇄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굿이어 아미엥 공장 노동자들(출처=FT) |
물론 몽트부르 장관이 "해고는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것도 맥락이 완전히 다르진 않다. 실업률을 낮추겠다는 건 올랑드 정부의 최대 공약. 그러니 당장 구조조정을 해 기업의 경쟁력을 살리는 것보다는 10%대에 달하는 실업률을 더 높이지 않으면서 실업급여 지출도 줄이고, 노동자들도 달래자고 나서면서 이런 '프랑스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기업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아르셀로 미탈과의 소동이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빚으면서 프랑스 정부도 입장이 곤란한 부분이 있다. 정부는 "프랑스에 '네'라고 해주세요(Say 'Oui' to France)"란 해외투자유치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이번 소란까지 불거지며 프랑스에서 사업하기란 쉽지 않다는 인식이 더 퍼질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