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의 함정
[뉴스핌=김연순 기자] 이달 1일 시공능력 35위인 중견 건설업체인 남광토건이 결국 법원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남광토건은 지난 2010년 10월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상태에 있었다.
앞서 지난달 16일에는 워크아웃 대상인 삼환기업이 채권단과 상의없이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금융당국과 채권단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금융권의 '기업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을 받아 워크아웃 대상인 건설업체들의 '법정관리행'이 줄을 잇고 있다.
건설업계는 채권회수를 명목으로 무리하게 자산을 매각하는 금융권의 행동을 비난하며 법정관리행의 '불가피성'을 항변한다. 하지만 기업들의 잇따른 '법정관리 러시' 중심에는 통합도산법상의 법률상 허점이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6일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건설사 등 기업들의 법정관리 행태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 법정관리 신청, 통합도산법 도입 후 '10배' 늘어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통합도산법 도입 이전 연간 70~80건 정도에 불과했던 기업들의 법정관리 신청건수는 통합도산법 도입 이후 최근 연간 600여 건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통합도산법 도입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이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통합도산법 도입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들이 많아진 이유는 뭘까.
금융당국과 금융권에서는 통합도산법상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DIP)'를 지적한다. DIP는 기존 경영자가 부실책임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기존 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하는 제도다.
통합도산법은 기존의 화의법, 회사정리법, 파산법, 개인채무자 회생법 등 4개 법률을 통합해 지난 2006년 4월부터 시행됐다. 파산위기에 처한 기업과 개인채무자의 신속한 회생을 도울 목적으로 마련됐으며 정식 명칭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다.
기업들이 경영이 어려워질 경우 기존에는 회사정리법이나 파산법 가운데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했으나, 통합도산법에서는 회생 절차만 밟으면 된다.
특히 과거에는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대부분 경영권을 박탈당했던 것과는 달리 통합도산법에선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통합도산법은 경영진의 중대한 잘못이 없으면 대주주 지분을 소각하지 않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에 따라 경영권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당국에서는 통합도산법상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가 기업들의 잇따른 '법정관리'로 악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통합도산법 도입 이전에는 금융권 채권자들이 관리인을 바꿀 수 있어 경영진이 대부분 물러났지만 통합도산법에선 기존 경영진이 관리인으로 유지된다"면서 "지금은 기업들 입장에서 법정관리로 가는 것이 워크아웃으로 가는 것보다 유리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기존 경영진이 법정관리 신청 이후에도 대부분 관리인으로 지정되면서 기존 경영진 입장에서는 법정관리로 가는 것이 손해볼 게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현 통합도산법상에서는 기존 경영진이 법정관리 기업 관리인이 돼 직접 조사하고 조정안을 만드는 우스운 상황이 됐다"면서 "(관리인 지정이) 예전 방식으로 바뀌면 법정관리로 가는 기업이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라고 전했다.
◆ 기업들의 '모럴해저드' 심각
워크아웃 대상 기업 입장에서는 통합도산법상 경영권을 보장받는 데다 빚 탕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법정관리로 가는 큰 유인이 되고 있다. 법정관리는 워크아웃과 달리, 금융권 채권만 동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도급업체 등과의 상거래 채권까지 모두 동결된다.
즉 워크아웃상에선 금융기관만 손실을 부담하고 상거래채권자의 권리가 보장되지만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상거래채권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기업들의 법정관리가 남발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하도급업체에 전가될 수 있는 구조다. 이에 따라 삼환기업의 상거래채권을 보유한 700여개 협력업체의 유동성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법정관리 신청 기업 입장에선 비난을 받는다해도 경영권을 보장받고 빚을 더 탕감받을 수 있어 신청 유인이 많아진다"면서 "자기 혼자만 탕감받고 나오겠다는 기업들의 모럴해저드는 심각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또한 지난 6일 "경기가 계속 나빠진다고 생각하면 건설사 등 기업들이 법정관리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면서 "채무탕감폭이 크고 상거래채권까지 동결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6개월 이내에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제도도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되면서 법정관리 신청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Newspim] 김연순 기자 (y2k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