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의 무역 협정 타결 지연, 지정학적 위기 등에 인도 주식 매도세 강화
"RBI, 속도 조절 나설 수 있지만 약세 흐름 막을 수 없을 것"
[방콕=뉴스핌] 홍우리 특파원 = 외국인 자본 유출이 이어지면서 인도 루피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21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루피 가치는 이날 달러당 91.7450루피까지 0.8% 급락하며 작년 12월에 기록했던 최저치를 경신했다. 루피는 이날까지 6거래일 연속 하락하면서 아시아 통화 중 최악의 실적을 보였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인도 현지 업무 시간 기준, 21일 종가는 달러당 91.5770루피를 기록했다. 이 역시 역대 최저치다.
22일 현재 루피 가치는 달러당 91.70루피를 상회하고 있다. 루피는 14일 이후 이날까지 7거래일 연속 약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의 무역 협정 체결 지연이 투자 심리에 부담을 주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인도 주식 매도가 루피 절하로 이어졌다. 인도 주식의 고평가 논란과 예상에 못 미친 기업들의 2025/26 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3분기(10~12월) 실적도 외국인 이탈을 부추기며 루피 절하를 압박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달 27억 달러(약 3조 9708억 원) 상당의 인도 주식을 매도했다. 지난해 약 190억 달러 규모의 순매도에 이어 이달에도 인도 주식 매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매체 비즈니스 스탠다드(BS) 자료에서는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자(FPI)의 이달 매도액이 3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8월 이후 최대 월간 순유출액이다.
인도 증시에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이 부족한 것, 인도 정부의 차기 회계연도 연방 예산 발표를 앞두고 신중한 분위기가 짙어진 것과 함께 강력한 인도 국내 자금 유입에 힘입어 매도 기회가 충분했던 것도 FPI의 인도 주식 매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BS는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대규모 주식 투자금 유출의 압박에 더해 기업들의 달러 헤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 제안을 거부한 유럽 국가들에 관세 부과를 위협한 뒤 위험 회피 심리가 강화됐다. 일본 국채 매도세까지 겹치면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인도 중앙은행(RBI)이 루피 절하를 일부 용인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신한은행 인도법인의 재무 책임자인 쿠날 소드하니는 "RBI는 21일 소폭 개입하는 등 대체로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고,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RBI가 루피 약세를 용인하는 것은 기업들의 투기적 거래보다는 실질적인 환율 헤지 목적의 자금 수요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ANZ의 외환 전략가인 디라지 님은 "현재의 위험과 국제수지 상황을 고려할 때 루피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며 "루피에 대한 압박을 완화하면(시장 개입을 줄이면) 우려스러운 국내 유동성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도 은행권의 현금 유동성은 현재 급격히 메마르고 있다. 채권 매입 등을 통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환율 방어를 위해 대량의 달러를 매도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코탁 마힌드라 분석에 따르면, RBI는 2024년 말부터 지급준비율 인하·채권 매입·외환 스왑 등을 통해 총 14조 5000억 루피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RBI는 또한 지난해 10월 이후 현재까지 외환시장을 통해 약 450억 달러를 매도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배경 아래 인도 은행 시스템 내의 잉여 유동성은 12월 초의 약 2조 6000억 루피(약 41조 7560억 원)에서 현재 약 7350억 루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메르츠방크의 애널리스트 찰리 레이와 모세스 림은 보고서에서 "RBI에게는 환율 수준 자체보다 하락 속도가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며 "RBI가 루피 가치 하락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지만 약세 자체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루피 가치가 추가 하락하며 연말까지 달러당 92루피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hongwoori8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