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총선을 앞두고 속속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자신이 몸담았던 당이 싫어서, 정치가 싫어서. 정당과 정치는 왜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을까.
이상민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자신의 유불리를 위해서라면 당적쯤이야 갈아치우는 게 정치인이라지만 20년가량 적을 두었던 곳을 떠나는 건 결코 쉬운 결심이 아니다. 이 의원의 말마따나 친명(친이재명)계가 되는 편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선 쉬운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탈당은 곧 강성지지층인 '개딸'과의 결별이라고 규정했다.
지혜진 정치부 기자 |
휠체어를 절벽에서 밀어버리겠다고 하더라. 입에 담지도 못할 문자들을 너무 많이 받았다.
이 의원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당원들의 문자는 '정치인 이상민'이 아닌 '인간 이상민'에 대한 혐오였다. 제3자가 듣기에도 마음에 콕 박히는 말인데 당사자에겐 모욕과 모멸감을 주는 말이었으리라.
이 의원은 탈당 후 가장 후련한 게 강성지지층으로부터 더는 '문자 폭탄'이 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당 안에서조차 이견이 이적으로 공격받을 때쯤 되면, 시민의 사회는 물론 시민의 마음 역시 상처로 고통받는다. 개인과 집단의 다양한 선호로 움직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화하고 협력할 수 없는 민주주의,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을 혐오하는 민주주의가 온다. (박상훈, '혐오하는 민주주의' p.8)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홍성국 의원은 지난 4년을 '제로섬'으로 표현했다. 내가 이기기 위해 남을 제거해야 하는 정치권의 상황이 민간 부문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홍 의원으로서는 심정적으로 어려운 면이 많았다고 했다.
경제특보로서 내놓은 경제브리핑이 정치 기사에 실리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홍 의원의 보좌진들이 원내대책회의 때마다 기자들에게 브리핑 자료를 정성껏 인쇄해 나눠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정책보다는 힘의 논리, 권력의 향배에 이목이 쏠리는 게 우리 정치권이다. 말의 무덤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여의도 문법'이다. 거기엔 언론의 탓도 크다. 나도 그렇다. 날 선 말끝을 쫓다 보면 하루가 저물어 있다.
홍 의원뿐 아니라 오영환·이탄희 의원 등 '영입인재'가 줄줄이 정치권을 떠나는 것을 개별적 이유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정치라는 직업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정치를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거나, 정치가로서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다. 지금 같은 당내 환경에서 정치를 하는 일이 즐겁고 기쁘다고 말하는 의원들이 있다면 그야말로 독한 멘탈리티의 소유자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박상훈, 같은책 p.66)
2016년 헬조선 담론을 담은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이 출간됐다. 대통령이라는 '원대한 꿈' 대신 9급 공무원에 매달리는 시대의 자화상을 진단한 책이다. 2023년의 모습은 어떤가. 대통령은커녕 누구도 정치를 희망하지 않는 시대가 다가왔다.
떠난 이들의 자리를 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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