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과의 기술력 차로 국내 기업 공급 축소 우려
'제2의 수출 규제' 대비한 국내 소부장 생태계 구축 필요
[서울=뉴스핌] 이지용 기자 = SK그룹 계열사들이 일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이면서 일각에서 국내 소부장 생태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기술력을 갖춘 일본 소부장 기업의 국내 영향력이 커지면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성장 기회가 축소할 수 있어서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와 SK하이닉스는 최근 금융기관과 1000억원을 공동 출자해 해외 유망 소부장 기업들에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SK스퀘어의 주도로 별도의 투자법인을 설립했다. SK스퀘어와 SK하이닉스는 첫 투자 대상으로 일본 소부장 기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조성된 투자금의 60%를 일본 기업에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소부장 기업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TSMC 등의 투자로 일본이 반도체 생산 거점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세계 시장점유율 30%대를 차지하는 소부장 1~2위 기업들이 있다.
SK하이닉스 청주 공장. [사진=뉴스핌DB] |
그러나 업계에서는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일본 소부장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확대하면 지난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기술력을 높이고 있는 국내 소부장 생태계가 원상복귀될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이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주요 소부장 공급처이자 기술 개발을 아직 진행 중인 국내 기업 대신, 완성도가 높은 일본 기업의 제품을 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소부장 기업들이 국내 대기업으로 제품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제품 기술 개발을 위한 환경 조성 및 기업 운영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일본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의 일본 반도체 분야 대규모 투자로 기술력을 높인 일본 소부장 기업들의 공세가 거세질 수 있다. 한국 소부장 기업의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국내 소부장 생태계를 더 크게 흔들 수 있는 셈이다. TSMC와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일본 반도체 분야에 19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미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달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에 일본 소부장 기업을 유치하는 방안을 발표해 국내 소부장 생태계 유지의 위협 요인들은 커지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대기업들이 일본 소부장 기업과의 협업을 확대하면 국내 소부장 생태계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일본 기업의 기술력이 10년 이상 앞선 탓에 사실상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소부장 생태계 성장에 차질을 빚을 경우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의 소부장 공급망 또한 다시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제 정세에 따라 한국과 일본 정부의 관계가 악화하면 언제든 '제2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부장 공급망 차질뿐만 아니라 국내 소부장 생태계를 다시 구축하느라 되레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이 더 큰 시간과 비용이 들여야 할 수 있다.
이종환 교수는 "국내 반도체 대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기술력이 좋은 일본 기업의 제품을 쓸 수 있다"며 "다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내 소부장 기업에 투자에 집중해야 국제 정세에 휘둘리지 않은 안정적인 소부장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기술력을 감안하면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해외 소부장 기업들의 제품을 쓸 수 밖에 없는 한계도 있다"며 "이제부터라도 국내 소부장 기업의 제품 공급을 늘리면서 생태계를 구축해 가는 것이 이상적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이번 투자로 국내 소부장 생태계에 큰 영향은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통해 250억원을 출자하는 등 국내 소부장 기업 지원도 이미 확대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leeiy52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