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가계 부채, PF문제 건전성 정책 강한 집행 없어…정책 수단 가져야"
국정위 한은 보고…"신용·유동성 규제는 금통위, 비은행 포함 단독 검사권 필요"
핀테크 기업까지 금융 외연 확장 …'최종 대부자' 한은이 금융 안정 책임져야
[서울=뉴스핌] 온종훈 선임기자 = "가계부채 문제가 10년 넘게 한 번도 줄지 않은 것,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가 생긴 것, 이런 것들이 왜 생겼나 보면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이 말은 했지만 실제 집행이 강하게 되지 않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발언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이 총재의 입장과 이와 연관된 한은의 거시건전성 정책수단 확보 차원에서 금융당국 조직개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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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07.10 photo@newspim.com |
'최종 대부자'로서 중앙은행인 한은이 금융감독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 총재가 거듭 밝혀온 '소신'이지만 이날 발언은 어느 때보다 강경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사실상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까지 겨냥해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정책이 서로 유기적으로 가야 되는데 그런 메커니즘이 없었다고 생각한다"고까지 말했다.
한은은 최근 "거시건전성 정책 수단을 보유하고, 금융안정 관련 기구 내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의 보고서를 금융안정 정책체계 개편안을 국정기획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 정부 들어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금융감독체계 걔편 논의에 대한 한은의 공식 입장인 셈이다.
한은은 "금리 이외에는 금융불안에 미리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확보돼 있지 않다"며 한은과 달리 호주,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직접 거시건전성 정책을 수립·집행하고, 미시건전성 감독 권한을 보유하거나 금융안정 협의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 중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한은이 요구하는 권한은 크게 두 가지다. 현 체계에서는 금융위가 보유한 신용·자본·유동성 등의 규제 권한을 한은 금통위가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화정책의 최고 결정기구인 금통위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담보인정비율(LTV) 등과 관련한 규제 결정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금융기관 단독검사권을 한은이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금감원에 금융기관 검사와 공동 검사를 요구할 수만 있다. 특히 금융 시스템에서 비은행 부문 비중이 커진 상황을 고려할 때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금융기관도 단독 검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은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전까지 한은 부속 기관이던 은행감독원을 사실상 부활시키면서 비은행 감독권까지 추가 부여해 과거보다 더 큰 권한을 갖게된다. 은감원은 1950년 한은 설립 당시부터 있던 기구로 외환위기 당시 금융개혁법안의 하나인 한은법 개정으로 이듬해인 1998년 한은에서 분리돼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등과 함께 금융감독원으로 통합됐다.
한은 측은 최근 이같은 논의의 흐름이 잃어버린 권한을 되찾기 위한 한은의 기관 이기주의로 모는 프레임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 한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의 금융 혼란과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등 금융불안과 해결과정에서 '최종 대부자'인 한은이 나섰는데 이에 앞서 위기를 촉발하지 않게 감독이나 규제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 배제되어 있는 현 감독체계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 금융산업 자체가 27년 전과 달리 비은행 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으로 크게 확대된 데다 은행만의 감독 기능을 갖고 '금융 안정'을 위한 실제적인 위기 감지나 예방의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이다.
한은의 이 같은 계획에는 청신호가 감지된다. 과거 한은의 금융감독권한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입법 시도가 민주당 계열의 의원들에게 주로 있어 왔고 현 정부의 주요 핵심 인사들도 이에 대해 찬성하는 기류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하준경 경제성장수석도 교수 시절 "한은은 최종 대부자로서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며 한은의 감독권한 부여에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국정위도 최근 한은 총재가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국정과제에 담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신속 대응에 문제점이 있다지만 한은이 금리 정책 외에 금융안정 차원에서 금융현안에 대한 적극적 입장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이 총재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재부, 금융위, 금감원, 한국은행이 거시건전성 정책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중 특히 한은이 보이스를 높여서 정치적인 영향없이 거시건전성 정책이 강력하게 집행될 수 있는 지배 구조가 만들어져야 된다"라고 강조했다.
ojh11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