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세종문화회관(사장 안호상)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레퍼토리 공연 '일무'를 한 단계 더 진화한 버전으로 선보인다. 전통 무용에 현대적 감성을 가미하고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극대화한 서울시무용단만의 '일무'다.
25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5층 연습실에서 '일무' 연습실 현장 공개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서울시무용단 정혜진 단장과 김성훈 안무가, 정구호 연출, 김재덕 음악 담당이 참석해 작품 창작 과정과 함께 새로이 추가된 '죽무'에 대해 설명했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연습현장 공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
◆ "전통의 재현 아닌 재구성"…3막에 추가된 죽무와 '주황색 의상' 의미
이날 연습실에서 시연된 '일무'의 일부는 1막의 무무(정대업지무)와 2막의 춘앵무로 무무에 출연하는 남성무용수 18명의 의상이 전통한복답지 않은 주황색으로 바뀐 것이 눈길을 끌었다. 단 30분의 연습 장면에서도 정적이면서도 절도있고, 정중동의 미학을 담은 동작을 열을 지어 선보이는 '일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일무'는 지난해 세종 시즌 레퍼토리로 초연을 올리며 호평받았으며 정혜진 단장과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제작극장'을 표방한 세종문화회관의 첫 작품이자 한국무용 초연으로는 이례적으로 3022석 세종대극장에서 총 4회 공연을 펼친 일무는 75%라는 객석점유율을 기록했다. 올해 '일무'는 5월 25일부터 28일까지 4일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을 앞두고 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서울시무용단 정혜진 단장 [사진=세종문화회관] 2023.04.25 jyyang@newspim.com |
정혜진 무용단장은 "'일무'는 전통을 그대로 올리는 공연은 아니다. 정구호 선생님이 제안하실 때 국립국악원에서도 그해 '일무'가 발표됐었고 국립무용단에서도 했다. 우리만의 '일무'의 성격을 많이 고민했다. '일무'는 현재의 종묘 제례악을 차용하기보다 연회에서 사용하는 무용에 초점을 두었고 줄을 지어 춤을 춘다는 의미로 일무의 테마를 잡아서 춘앵무도 포함될 수 있었다. 혼자 추는 춘앵무를 열을 지어서 추는 일무로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무'가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를 생각할 때 질서와 본분을 잘 지키면서 우리 마음을 잘 모아서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그런 작품을 우리가 해야 하지 않을까 했다. 창작에 더 중심을 둔 작품으로 만들고자 올해는 기존의 분량을 많이 삭제했고 전통적 일무를 재구성하려 했다. 3막에서 죽무라는 선비의 절개를 나타내는 대나무같은 하얀 구조물 사이에서 그걸 건드리지 않고 남성들이 절도있는 군무를 보여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연습현장 공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
정구호 미장센 연출가는 "작품을 만들면서 추구하는 바는 분명하다. 전통을 변화시키는 폭이 크지 않다는 점을 느꼈고 그걸 진화시키려 한다"면서 "여러 가지 전통의 색 중에서 중요한 색을 정리해서 상징적인 색을 보여준다고 할 때 일무는 거기서 조금 더 색조적으로 다양하게 재구성을 했다고 보면 좋을 것"이라고 이번에 주황색으로 바꾼 '무무'의 의상을 언급했다.
그는 "전통색에서 조금 벗어난 색이고 상징적인 색이다. 시연을 보고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상징성이 정말 중요하다. '일무'를 처음 할 땐 전통색에 가까운 색을 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현대적으로 더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서는 색감 역시도 조금 더 가야 하지 않을까 했다. 현대적으로 가면서도 전통을 가미한 상징적인 느낌을 의도했다. 무관들의 춤인데 무관들이 고지식한 모습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조금 탈피해보면 좋지 않을까 했다"고 의상 색 교체 이유를 말했다.
◆ 새로움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통…'일무'의 정신을 생각하며
이날 정혜진 단장은 "일무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 시대의 일무, 새로운 일무, 새로운 전통을 생각하며 전통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창작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전통을 답습하는 것이 새로움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많았고 현대적으로 친숙하면서도 새롭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가 '일무'다. 가장 힘든 건 단원들인데 똑같은 동작을 만들어낸다는 게 한 번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같은 호흡을 가져간다는 게 어렵다. 하나의 포지션을 맞추기 위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단원들마다 다르게 하고 싶은 걸 참으면서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을 갖고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고 그런 노력들이 모여서 작년의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연습현장 공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
정구호 연출가 역시 "실제 관객들이 전통에 대해서 관심을 안갖는 건 계속 같은 것을 답습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무는 기존의 전통에서 벗어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반응이 좋지 않나 싶다"고 지난해 흥행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또 "정 단장님 이하 무용단이 정말 힘든 과정을 통해서 최고의 무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가장 단순해보이는 작품이지만 일무 자체의 동작을 많은 사람이 맞춰서 열을 지어 보여주는 건 엄청난 연습과 노력의 결과이고 많은 분들이 꺼리기도 한다. 지루할 수도 있는 것을 지루하지 않은, 새로운 것으로 보여주고자 한다는 데에 단장님과 단원들 노고가 크다 덕분에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3막에 추가되는 죽무는 이날 시연이 없었음에도 모두의 궁금증과 관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레퍼토리였다. 정 연출가는 "2막까지 전통을 보여주고 4막이 신일무라고 해서 콘템포러리를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 딛고 가는 막을 보여주고자 했고 쉼이면서도 느긋하기보다 긴장감이 있는 쉼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작품 의도를 말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일무'의 정구호 미장센 연출가 [사진=세종문화회관] 2023.04.25 jyyang@newspim.com |
그는 "죽무를 긴장감있는 쉼이라고 했지만 엄청난 난이도의 무용을 보여주실 예정이다. 템포가 빠르지 않지만 30-40개의 긴 대나무 파이프 상징물 사이를 건드리지 않고 예민하게 춤을 추는 동작들을 해내실 거고 완전 콘템포러리로 넘어가기 전 단계의 긴장감과 디딤을 보여드릴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정혜진 단장은 "그 작품이 너무 난이도가 있어서 무용수 한 분이 한 달간 연습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근육이 파열됐다. 계속해서 연습을 하다보니 한 분이 출연을 못하게 되기도 했다. 일무 자체가 이 안에 철학이 하나 담겨있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찾아나가는 것이 우리 삶의 하나의 미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선비의 질서와 기개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다이나믹한 남성들의 춤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를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