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플리바게닝 법안 제출됐으나 폐기
미국과 일본 등은 이미 플리바게닝 제도화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 능력 제한으로 필요성↑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이원석 검찰총장이 수사 협조자에게 형량을 감경해주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의 연구 필요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국내 검찰 수사 제도에도 도입될지 관심이 쏠린다.
앞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 과정에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잇따른 폭로로 검찰이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플리바게닝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국내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이면서도, 검찰의 수사 편의 및 권한 남용 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총장은 전날 "미국 형사절차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플리바게닝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 검찰 제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뉴욕 남부연방 검찰청 검사장 직무대리를 역임한 준김 변호사(한국명 김준현)는 대검찰청을 방문해 '미국 형사사법 절차상 검사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수사 과정에서 플리바게닝 제도를 운영하는 미국 사례를 소개한 데 따른 것이다.
준김 변호사는 강연에서 "미국에서는 플리바게닝 없이 복잡한 수사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사에 있어서 큰 부분"이라며 "플리바게닝 없이 증인을 찾고 증거를 발견해 법원에 제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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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2022.04.26 pangbin@newspim.com |
유죄협상제로 불리는 플리바게닝은 본인의 죄를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한 사람의 형량을 줄이거나 감경해주는 제도다. 이미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도입 방안이 검토됐으나 제도화되진 못했다.
2011년 법무부가 플리바게닝을 제도화 하고자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무죄추정의 원칙 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이후 2016년 대검 산하 공법연구회에서 형법학자들로부터 플리바게닝 도입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회의를 열기도 했다. 2018년에도 대검 검찰개혁위원회가 플리바게닝 도입을 논의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플리바게닝이 형량 감경을 조건으로 피의자나 피고인의 진술을 유도해 오히려 형사소송법상 진술거부권 등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반대가 여전했다.
최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 과정에서 플리바게닝 논란이 불거지면서 제도화의 필요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른바 '대장동 일당' 중 한 명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그간 침묵을 유지하다가 구속 기한 만료로 출소하면서 사건과 관계된 주요 증언을 폭로하자 검찰과 플리바게닝 형식의 사법거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검찰 안팎에서는 플리바게닝을 제도화해 공범의 증거 능력을 확보하고 거짓 증언할 경우 가중 처벌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올해 형사소송법 개정안 시행으로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 능력이 제한돼 플리바게닝 도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컸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 능력이 제한돼 부패범죄 등 복잡한 사건의 경우 공판 단계에서 증거를 일일이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플리바게닝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법조계 또한 수사와 재판이 장기화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플리바게닝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미와 유럽, 일본에서는 이미 플리바게닝을 공식화했다"며 "수사와 재판 지연 문제와 조직 범죄의 몸통을 처벌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플리바게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외국 형사사법체계와 국내 실정을 면밀히 비교하는 등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플리바게닝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수사 편의주의나 검찰권 남용에 대한 우려가 존재했다"며 "해외에서 제도화된 사례를 국내에는 어떻게 적용할지 신중히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봤다.
s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