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우유, 원유 L당 58원 지원...사실상 원유값 인상
'先제도개선·後가격결정' 추진한 정부·유업계 '당혹'
서울우유 등에 업은 낙농가, 정부에 협상 재개 요구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정부의 낙농제도 개편을 놓고 낙농가와 유가공업계 간 줄다리기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우유가 사실상 원유 가격을 인상하면서 낙농가에 힘을 실었다.
업계 1위인 서울우유의 독자 행동으로 용도별 차등제의 우선 도입을 추진하던 정부와 유가공업계는 협상력에 다소 힘이 빠진 셈이다. 반면 서울우유를 등에 업은 낙농가는 정부에 제도개편 협상 재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우유협동조합(서울우유)는 지난 16일 대의원 총회를 통해 소속 낙농가 1500여곳에 목장경영안전자금 명목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의결했다. 지원금은 원유 1L당 58원으로 월 30억원 수준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360억원 규모다.
서울우유는 사룟값 상승에 따른 낙농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단순 지원금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우회적으로 원유값을 인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낙농제도 개편을 놓고 낙농가와 정부, 유업계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우유가 사실상 낙농가의 손을 들었다는 해석이다.
관련해 서울우유 관계자는 "올해 사룟값이 30~40% 급등하는 등 어려움이 커진 낙농가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원유가격 인상과는 관련이 없다"며 "보조금 지급기한이 정해진 것은 아니며 낙농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유 제품의 소비자가격 인상 계획도 현재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18일 서울 도봉구 창동 하나로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2021.07.18 yooksa@newspim.com |
서울우유의 보조금 지급으로 원유 가격 결정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낙농가는 정부에 낙농제도개편에 대한 협상 재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지난 18일 정부의 낙농제도 개편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와 함께 협상재개를 요청하는 공문을 농림축산식품부에 전달했다.
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용도별 차등 가격제 협상에 대해 이전 보다 전향적으로 협상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며 "농가의 소득 유지와 낙농 자급률 향상을 전제로 논의가 하루빨리 재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원유가격 협상 조건으로 기존 생산비 연동제를 폐지하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내걸었던 정부와 유가공업계는 서울우유의 독자행동으로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선(先) 제도개편, 후(後) 원유값 협상'을 추진했으나 업계 1위 업체가 사실상 협상범위(L당 47원~58원) 내 최고 수준인 L당 58원으로 지원금을 결정하면서 협상력이 다소 흔들리게 됐기 때문이다.
용도별차등가격제는 우유 원유를 흰우유를 만드는 음용유와 치즈·버터 등을 만드는 가공유로 이원화해 가격을 차등적용하는 것이다. 국내 유제품이 수입산 대비 가격경쟁에서 뒤처지는 점을 감안해 음용유는 가격을 유지하고 가공유 가격은 낮춰 부담을 줄이는 등 용도별로 물량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서울우유의 지원금 책정 직후 입장문을 내고 "서울우유가 자율적인 가격 결정을 한 만큼 현재 추진 중인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도입되더라도 서울우유에 의무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도록 하겠다"며 서울우유를 낙농제도 및 정책지원에서 배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가공업계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선 제도개편 원칙'이 흔들린데다 올해 원유가격 협상이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울우유가 책정한 지원금이 사실상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다.
통상 원유 가격이 오르면 2~3달 이내에 소비자 가격도 오른다. 서울우유는 지난해 원유 가격이 L당 21원 인상된 흰 우유 가격을 약 200원 올린 바 있다. 서울우유가 지원금으로 책정한 L당 58원은 지난해 인상분의 두 배 이상 높은 만큼 올해 우유 가격 인상 폭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업계 관계자는 "서울우유가 우회적으로 원유가를 인상하는 바람에 정부와 유업계 모두 난감한 상황이 됐다"며 "우유 원유의 경우 재고를 쌓아둘 수 없기 때문에 길어야 2~3개월 내에는 소비자가에 반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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