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인권위 제도 개선 권고 일부만 수용
인권위 "4인 이하 사업장 확대 적용"…고용부 "중장기 검토"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직장 내 괴롭힘 처벌 규정을 만들라고 권고했지만 고용노동부(고용부)는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인권위에 따르면 고용부는 인권위가 지난해 7월 2일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피해 노동자 보호를 위해 권고한 ▲행위자 처벌 규정 도입 ▲4명 이하 사업장 확대 적용 ▲제3자 괴롭힘으로부터 노동자 보호 ▲예방교육 의무화 중 일부에 대해서만 수용한다고 회신했다.
특히 고용부는 행위자 처벌 규정 마련에 난색을 표했다. 직장 내 괴롭힘 범위가 법으로 정해지고 범죄라고 못 박히지 않는 이상 처벌 규정 마련은 어렵다는 이유다.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지위·관계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적 내용만 담겨 있다.
인권위는 고용부 설명을 반박하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은 노동관계법 실효성 확보를 위해 적절한 처벌 등 제재 규정을 마련하도록 한다"며 "행위자에 대한 처벌 규정 등 적절한 제재 규정이 없는 규범은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7.16 dlsgur9757@newspim.com |
고용부는 4명 이하 사업장 확대 적용에 대해서도 연구용역을 거쳐 중장기적으로 검토해보겠다며 후순위 과제로 미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4인 이하 사업장에는 직장 내 괴롭지 금지가 적용되는 않는 것.
인권위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가·피해자 간 접촉이 빈번해 괴롭힘 문제는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재정적 지출을 요하는 것도 아니어서 중장기 과제로 미루기엔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아파트 경비원 갑질 등 제3자에 의한 괴롭힘 보호와 관련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고객 폭언으로부터 모든 근로자를 보호한다고 고용부는 답했다.
이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를 '고객'으로 한정하면 원청업체 관계자나 회사 대표 가족·친인척 등 제3자에 의한 사례를 보호할 수 없어서다. 인권위는 "행위자 범위를 '고객'에서 '누구든지'로 개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의무화와 관련해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안전보건 교육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내용을 포함시켰다고 답하며 인권위 권고를 수용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고용부가 인권위 권고 중 일부를 수용해 향후 정책 결정 및 집행에 반영한다는 입장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직장 내 괴롭힘은 사회 전반에 만연해 법제도의 한계가 지적된다"고 했다. 이어 "정부의 현행 법제의 한계 개선을 위한 진전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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