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미국 셰일 업계가 말 그대로 벼랑 끝 위기다.
은행권이 대출과 신용 라인을 대폭 축소한 데 따라 유동성 경색이 두드러지는 한편 유가 폭락에 따라 대규모 자산 감가상각이 불가피한 상황.
한계 기업들을 중심으로 파산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셰일 업계의 통폐합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셰일유 생산시설 [사진=블룸버그] |
22일(현지시각) 회계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미국 셰일 업체들이 연말까지 총 3000억달러에 달하는 감가상각을 실시해야 할 전망이다.
지난 4월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 사태 이후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40달러 선까지 반등했지만 유전을 포함한 핵심 자산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주요 업체들이 유정 가동을 멈춘 한편 유전 개발을 중단하고, 대규모 인력을 감원한 데 따라 산유량이 대폭 줄었다.
유전 이외에 업계의 부동산과 생산라인, 대형 장비 등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해 레버리지 비율이 40%에서 54%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무건전성이 크게 악화된다는 얘기다.
유동성 위기도 날로 고조되는 양상이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에 따르면 유전과 가스전의 담보 가치에 따라 결정되는 은행권 대출 한도가 업체별로 평균 23% 줄었고, 신용라인 역시 15% 축소됐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은행권이 셰일 업계에 대한 신용라인을 반토막 수준으로 줄이고 나섰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실제로 블룸버그에 따르면 차패럴 에너지와 오아시스 정유의 대출 한도가 각각 46%와 53% 축소되는 등 일부 기업들은 자금줄이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S&P는 보고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은행권의 셰일 업계 담보 가치 재평가가 한층 엄격해졌고, 과거 위기 상황에 비해 대출 한도 축소도 큰 폭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셰일 업계의 통폐합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계 상황에 내몰린 기업들이 자산을 매각하는 한편 피인수 되는 사례가 급증할 것이라는 얘기다.
딜로이트의 듀웨인 딕슨 에너지 부문 부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연말까지 셰일 업계를 강하게 압박할 전망"이라며 "앞으로 6~12개월 사이 업계 통폐합이 활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동성 위기 이외에 기업의 줄도산이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로펌 헤이네스 앤 분에 따르면 올들어 5월 말까지 파산 절차에 돌입한 셰일 업체가 18개에 달했다.
텍사스 셰일업계의 간판급인 체사피크 에너지가 조만간 파산보호를 신청할 것으로 보이는 등 기업 파산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35달러 내외에서 유지될 경우 셰일 업체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디폴트 위기를 맞을 것으로 업계 전문가는 내다보고 있다.
30% 이상의 기업들이 잉여현금흐름으로 장단기 회사채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다는 의미다. WTI는 2분기 평균 배럴당 27달러를 기록한 만큼 유가 급락에 따른 충격이 작지 않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통폐합조차 매끄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충분한 인수 가치를 지닌 업체가 27%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