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장애 극복 새 패러다임 제시
UNIST, 필수 아미노산 ‘트레오닌’ 연구
‘e라이프(eLife)’ 게재
[서울=뉴스핌] 김영섭 기자 = 커피를 비롯해 카페인이 들어있는 음식은 잠을 방해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수면을 돕는 음식은 없을까? 동물성 단백질에 많이 포함된 필수 아미노산 가운데 하나인 ‘트레오닌(threonine)’이 해결책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8일 UNIST(울산과학기술원·총장 정무영)에 따르면 이 대학 생명과학부 임정훈 교수팀은 트레오닌의 섭취가 수면 유도 현상에 작용하는 과정에서의 신경생물학적 원리를 밝혀냈다.
아미노산 식이조절로 수면장애를 치료할 가능성이 제시된 것이다.
아미노산 대사 경로의 효소 작용과 대사 산물에 의한 수면조절 모델 : (왼쪽) 배가 고프면 뇌에서 아미노산 세린을 합성하는 효소의 양이 증가해 많은 양의 세린이 축적된다. 이러한 생화학적 신호는 아세틸콜린을 통한 신경 신호전달을 통해 수면을 억제한다. (선행연구) (오른쪽) 아미노산 트레오닌을 섭취하거나 신경세포 내 트레오닌 분해 효소의 작용을 저해하면 뇌 속의 트레오닌이 축적된다. 이 경우 가바(GABA)에 의한 수면촉진 세포의 기능 억제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수면을 촉진한다. 2019.07.28. [자료=UNIST] |
잠은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에게 필수적인 생리현상으로 여러 가지 신체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음식을 먹은 뒤 졸음이 오는 식곤증이나 배가 고프면 잠이 잘 오지 않는 현상 등이 좋은 예다.
임 교수팀은 형질전환 초파리의 수면 행동을 이용해 특정한 음식물의 섭취에 의한 수면 조절의 가능성을 검증했다. 이를 위해 20가지 아미노산을 각각 섭취한 초파리의 수면 변화를 분석, ‘트레오닌’이 수면을 유도하는 특이적인 아미노산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트레오닌을 섭취한 초파리는 깨어있는 상태에서 잠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았고, 트레오닌을 섭취하지 않은 초파리에 비해 오랫동안 수면을 유지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트레오닌이 뇌 신경세포의 신호전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타난다는 내용도 이번 연구로 밝혀졌다.
트레오닌을 많이 섭취하면 신경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mma-AminoButyric Acid)’의 양이 줄고, 수면을 촉진하는 핵심 뇌 부위의 대사성 가바 수용기(metabotropic GABA receptor)를 통한 신호가 약해진다. 그 결과 빨리 잠들고 오래 자게 되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기윤희 UNIST 생명과학부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잠을 자면 기억력이 좋아지는데, 기억장애를 갖고 있는 돌연변이 초파리에게 트레오닌을 먹여 수면 시간을 늘려주었을 때 기억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트레오닌 섭취에 의한 수면이 단순히 동물을 기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생리학적인 수면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임 교수팀은 다른 한 편으로 신경세포에서 트레오닌을 분해하는 효소의 생성이 억제된 형질전환 초파리를 제작했다. 이 초파리는 트레오닌을 음식물로 섭취하지 않아도 뇌 속 트레오닌의 양이 증가하는데, 이때도 수면촉진 효과가 확인됐다. 뇌 속에 트레오닌이 많아지면 수면이 촉진된다는 것이 이중으로 검증된 것이다.
앞서 임 교수팀은 KAIST 생명과학과 최준호 교수와 공동연구를 통해 세린(serine)이라는 아미노산의 수면 억제 현상을 규명해 2018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바 있다. 배가 고플 경우 뇌에서 아미노산 세린의 합성이 증가하며, 이에 따라 아세틸콜린을 통한 신경 신호전달 경로가 활성화되어 수면을 억제한다는 걸 밝힌 것이다.
임 교수는 “수면의 새로운 조절 인자로서 뇌 신경세포 내 아미노산 대사 작용의 중요성을 밝힌 연구”라며 “중추신경에 인위적으로 작용해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수면장애 치료제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면장애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결과는 생명과학·의학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인 ‘이라이프(eLife)’ 7월 17일자로 공개됐다.
kimy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