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카풀 잠정 중단...스타트업도 무료 서비스로 명맥 유지
업계, "정부·정치권, 중재 및 법안 개정 등 적극적 움직임 필요"
[서울=뉴스핌] 성상우 기자 = "말(馬)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자동차는 없었을 것이다."
몇 달째 논란이 되고 있는 모빌리티 신산업과 택시 등 기존 산업 사이의 갈등 구도를 놓고 최근 회자되는 문구다. 얼마 전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혁신 촉진과 기존 산업 보호라는 상충적 개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이 표현으로 대신했다.
국내에서 태동하고 있는 모빌리티 신산업은 확실히 높은 벽에 부딪힌 형국이다. 현재로선 택시업계라는 거대한 진입장벽을 넘어서기 힘들어보인다. 신기술과 아이디어 기반의 스타트업들 뿐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력과 시스템을 갖춘 카카오 등 대기업들도 이 벽에 부딪혀 주요 사업을 잠정 중단한 상황이다.
모빌리티 혁신은 거스를 수 없는 큰 물결이라는 사실 자체엔 업계와 주요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들은 일제히 "혁신을 가로막으면 새로 재편될 글로벌 모빌리티 생태계에서 소외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다만, 이들에게도 '택시업계'라는 투표권을 가진 이익집단은 넘어서기 힘든 벽인 듯 하다.
220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보유한 모빌리티 플랫폼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 역시 이 벽에 막혀 핵심 신사업이었던 '카풀'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지 기약이 없다. 카카오가 택시업계와 함께 '혁신형 플랫폼 택시'를 내놓고 카카오 역시 카풀 사업을 다시 추진하는 쪽으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정치권에서 이뤄져야할 '여객자동차운송사업법' 개정을 포함한 후속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풀 사업은 관련 법 개정 등 후속 조치가 완료된 후에 재추진될 것"이라면서도 "카풀 사업의 선결조건격인 플랫폼택시 등도 관련 법 개정 논의 등이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어 정확한 시기는 추정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카카오는 사실상 기약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모빌리티 스타트업들도 대부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풀러스, 위풀 등 스타트업들은 택시업계의 반대 여론이 본격 생격난 후부터 사업을 중단했거나 유료 서비스를 무료 서비스로 전환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모빌리티 신산업 관련 '규제 샌드박스' 신청 역시 같은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혁신'을 명목으로 기존 산업 종사자들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기존 제도에 따라 일정한 사업권을 보장받고 이 범위 안에서 생계를 이어온 자들의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는 보호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도저도 아닌' 현재의 상황을 마냥 방치해선 안된다. 자본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스타트업들은 이 시간을 오래 버티기 힘들다.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창업한 이들은 기다리는 동안 체력을 잃고 무너질 수 있다. 국내에서 막 태동한 생태계 자체가 고사해버릴 수 있는 위기다.
정치권과 관계 당국이 무엇이든 해야한다.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정리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줘야 기업들이 계획을 짤 수 있다. 모빌리티 업계의 모든 이들이 이를 기다리고 있다. 정체돼 있는 동안 글로벌 기술 생태계 역시 해외 업체들에게 선점당할 것이란 게 업계의 공통된 우려다. '우버' '디디추싱' '그랩' 등 해외 모빌리티 업체들은 이미 우리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 규모의 공룡이 돼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카풀, 택시만이 문제가 아니다. 공유전동자전거와 버스 등 다른 이동수단들도 혁신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한데 여기엔 카풀보다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규제도 많다. 국내 사업 환경상 이쪽은 아직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모빌리티 산업에서 우리나라만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될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swse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