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단독선두를 유지한 끝에 우승했을 때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써야
[뉴스핌] 김경수 골프 전문기자 = ‘이태희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했다’
5일 남서울CC에서 끝난 제38회 GS칼텍스 매경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이태희는 4라운드합계 9언더파 275타(67·69·68·71)로 야네 카스케(핀란드)와 공동 1위를 이룬 후 연장 세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고 우승상금 3억원을 차지했다.
연장 승부에다가 거액의 우승상금 때문에 이태희는 화제가 됐다. 언론들도 이태희의 우승 소식을 크게 전했는데, 그 중에는 이태희의 우승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라고 표현한 곳도 있다.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는 원래 경마 용어로 알려진다. ‘출발점(처음)부터 결승(끝)까지’ 또는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뒤에 빅토리(victory)를 붙이면 출발점부터 선두로 나선 후 한 번도 리드를 뺏기지 않고 결승선에 맨먼저 들어왔다는 뜻이 된다.
이태희가 2019매경오픈골프선수권대회 연장 세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고 우승이 확정되자 기뻐하고 있다. [사진=KPGA] |
언제부터인가 골프에서도 이 용어를 많이 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다. 골프에서 이 용어는 선수가 첫날 단독 선두에 나선 후 매 라운드에서도 단독 선두를 유지한 후 우승할 때만 사용한다.
미국골프협회(USGA)나 미국PGA투어 및 유러피언투어, 외국의 유수 언론들도 그런 경우에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 말을 쓸 때 ‘공동선두는 배제’(start-to-finish winners, no ties)라고 명시한다. 요컨대 나흘(또는 사흘)동안 특정라운드에서 한 번이라도 공동 선두를 기록한 후 우승할 때에는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USGA는 1895년부터 지난해까지 치른 118회의 US오픈 역대 챔피언가운데 여덟 명(월터 헤이건, 제임스 반스, 벤 호건, 토니 재클린,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 마틴 카이머)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기록했다고 덧붙인다. 우즈는 US오픈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2000,2002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했다.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인지 보여준다. 아무 챔피언에게나 함부로 쓸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지난 2015년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에서 조던 스피스는 첫날 64타를 쳐 단독 1위로 나선 후 2∼3라운드에서도 단독 선두를 유지한 끝에 4라운드합계 18언더파 270타(64·66·70·70)로 우승했다. 이 경우에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라는 말이 성립한다. 스피스는 그 이듬해에도 마스터스 1∼3라운드에서 단독 선두를 유지하며 2년 연속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노렸으나 최종라운드에서 대니 윌렛에게 역전당했다. 스피스는 2017년 미국PGA투어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에서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투어 통산 10승째를 올렸다.
미국LPGA투어의 강호 렉시 톰슨은 2017년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나흘 내내 60타대 스코어를 낸 끝에 20언더파 265타(65·65·69·65)로 투어 통산 8승째를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장식했다.
올해 매경오픈에서 이태희는 첫날에는 다른 세 명(이성호 최고웅 이경준)의 선수와 함께, 둘쨋날과 셋쨋날엔 카스케와 함께 공동 선두였다. 1∼3라운드 종료시점 기준으로 단독선두로 나선 적이 없다. 따라서 엄밀하게 따지면 이태희의 이번 우승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 아닌 것이다.
골프 관련 용어에서 틀리는 것은 와이어 투 와이어만은 아니다. 골프 전문가들조차 레이업을 레이아웃으로 표현하고, 라운드 시작 시각을 의미하는 티오프를 티업이라고 말한다. 특히 본래 의미에서 일탈해 아무 데다 갖다붙이는 ‘용어 인플레이션’은 한국 골프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