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보수와 실용정책주의, 세력화 노선 충돌.
6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결론은 "논의가 가능하다는게 희망"
유승민 "오랜 기간 준비해 말했지만 달라진 것 없어"
[양평=뉴스핌] 김현우 기자 = 시침이 반바퀴를 돌았지만 토론은 끝나지 않았다. 8달 만에 모습을 보인 유승민 의원은 당 정체성 논쟁에 불을 붙였다. 전날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열린 2019년 바른미래당 의원연찬회는 민주평화당과의 통합을 통한 ‘세력화’와 개혁보수정당이라는 ‘창당정신’이 평행선을 달렸다.
연찬회 장소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한 호텔. 최저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였지만 회의장 주변은 더운 공기가 가득했다. 연찬회에 참석한 모든 의원들은 바른미래당을 상징하는 민트색 외투를 입었지만 회의가 진행될수록 하나둘 겉옷을 벗었다. 유승민 의원은 회의 중간에 목이 탔는지 회의장 바깥으로 나와 물을 찾기도 했다.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8일 경기도 양평의 모 호텔에서 열린 연찬회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사진=김현우 기자] |
이날 회의에서는 손학규 대표 등 소속 의원 22명이 열띤 마라톤 토론을 벌였다. “우리 당은 존속이 문제가 아닌, 한국 정치에 새로운 길을 열 정당”이라는 손 대표 모두 인사와는 달리 이날 논의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바른미래당의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날 바른미래당이 공들여온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는 단 20분에 그쳤다. 대다수 회의 시간은 당 정체성 논쟁이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1차회의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에게 “20여분간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하고 나머지 시간동안은 당 진로, 정체된 당 지지율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토론에 앞서 유승민 의원은 “바른미래당은 개혁보수 정당”이라고 못을 박았다. 유 의원은 “바른미래당이 선명한 개혁보수 정당임을 분명히 하고 보수 재건의 주역이 되자는 게 내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유 의원이 개혁보수를 천명하면서 지난해 연찬회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국민의당 출신인 김동철 의원은 저녁 식사를 앞두고 “유 의원이 선명한 개혁보수를 말했는데 국민들은 그런 이념에 관심이 없다”며 “이념보다 청년 일자리, 자영업자 등 산적한 현안 문제를 논의해야지, 창당한지 1년 된 정당에서 언제까지 정체성 논쟁을 할 건가”라고 유 의원을 정조준했다.
김 의원은 또 “유권자가 동의하지 않은 통합을 끝까지 밀고 가다 당이 분열했다”며 “안철수 전 대표는 소신과 다른 양보를 통해 합의했는데 결국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이 8일 양평 모 호텔에서 연찬회를 열고 당 진로와 현안에 대해 토론자리를 가졌다. [사진=김현우 기자] |
박주선 의원도 “지난해 유 의원이 불참한 연찬회에서는 오랜 토론을 통해 우리당 이념 정체성을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는 민생실용정당으로 정했다”며 “정체성 문제보다는 민생 정책을 이야기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박주선 의원은 지난 7일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우리 당이 소멸하지 않을 정당이자 능력있는 정당이란 확신을 국민들께 주려면 세력화가 필요하다”며 “통합해야 이긴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민주평화당과의 합당 논의를 재개한 셈이다.
정체성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언주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30여분간 ‘신보수’를 내세웠다. 이 의원은 “양당 통합선언 당시 우리는 중도보수정당을 지향했다”며 “한국 정부가 북한 독재정권에 동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당은 창당정신에 맞게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 의원은 “한국당과 함께 해온 사람이 몇 개월 만에 찾아온 연찬회에서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며 “이야기 전에 당에 사과부터 하고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토론은 자정쯤이 돼서야 끝났다. 1차토론 1시간 20여분, 2차토론 4시간 50여분. 두 차례 토론을 했지만 ‘합리적 진보와 개혁 보수의 공존’이라는 지난해 연찬회 결과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한 의원은 “이념이 없다면 정책 정당이 무슨 소용이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손학규 대표는 뒷풀이 자리에서 “연찬회에 참석한 의원들 모두 모든 걸 열어놓고 미래를 고민하는 자세였다”며 “이언주 의원과 유승민 전 대표도 찾아온 연찬회 자체가 한국 정치 희망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관영 원내대표도 “이대로 회의를 계속 한다면 당 정체성도 자리를 잡을것이며 당의 정책도 통일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유승민 의원은 “내 주장을 오래 준비해 오늘 연찬회에서 밝혔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며 “이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with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