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폭행·고문 수사로 유죄판결...2014년 재심서 무죄 확정
정신적 손해배상청구...원심 “소멸시효 지났다”
대법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폭행·고문 등 불법 수사로 재심 판결에서 무죄가 확정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권리 행사 기간이 지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달 31일 수사 과정에서 폭행·고문을 받은 정모 씨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정 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20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18.11.20 kilroy023@newspim.com |
재판부는 “수사과정의 위법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재심절차에서 무죄로 확정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무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국가에 손해배상청구를 기대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경우 손해배상청구의 채무자인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정 씨가 무죄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른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 등은 소멸시효 주장에 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정 씨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1981년 운수회사 직원이었던 정 씨는 버스 안내양 등에게 “이북은 하나라도 공평히 나눠 먹기 때문에 빵 걱정은 없다”고 말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서에서 일주일 동안 수사 받고 구속기소됐다.
수원지방법원은 정 씨의 발언이 북한 공산집단의 사회제도를 은연 중 찬양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정 씨는 항소했으나 항소심 법원은 정 씨의 혐의를 유죄를 판단했다. 대법원도 정 씨의 상고를 기각해 유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정 씨는 수사 과정에서 폭행과 고문을 당해 오른쪽 눈의 시력이 상실된 것 등을 근거로 당시 수사관 최모 씨 등 3명을 직권남용 및 감금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관들에게 무혐의 처분했다.
정 씨는 2014년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사건에서 수원지방법원은 “정 씨의 발언이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을 초래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며 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정 씨를 비롯한 정 씨의 남편과 형제자매들은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있었던 위법행위를 이유로 2015년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수사관들의 불법체포 및 불법 구금행위로 손해배상 채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1981년으로부터 5년 이상이 지난 후인 2015년에야 이 사건의 소를 제기했으므로 정 씨의 손해배상채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판시했다.
또 “정 씨는 1983년경 수사관이었던 최 씨 등을 형사고소한 사실이 인정돼 당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 씨 측은 “해당 기간 동안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며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을 위배해 권리를 남용한 것”이라며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는 1982년 2월 석방됐고, 그로부터 5년 이상이 경과한 2015년 3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역수상 분명하다”며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진실규명 신청조차 없었기 때문에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해도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원고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며 정 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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