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이용 신소재 그래핀, 초고속 반도체 등 활용 무한
혈당 측정용 센서·전자파 차단용 렌즈에도 활용
2023년 10억달러 시장 성장 전망
흔들리는 그래핀 강국 위상 ‥"정부 지원 부족"
[세종=뉴스핌] 최온정 기자 = 탄소를 이용한 신소재인 그래핀이 차세대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아직 기초연구단계 수준이지만, 상용화로 이어지면 주력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이란 평가가 많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의 결합으로 이뤄진 벌집 모양의 2차원 평면 구조 탄소 동소체다.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고, 반도체로 주로 쓰이는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전자의 이동성이 빨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
특히 전기적 특성을 활용해 초고속 반도체, 투명 전극을 활용한 휘는 디스플레이, 높은 전도도를 이용한 고효율 태양전지 등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나오는 '게임 렌즈', 그래핀으로 실현 가능
그래핀의 가장 큰 장점은 전도성과 투명도가 모두 높다는 점이다. 이에 국내외에서는 그래핀을 이용해 다양한 용도의 스마트 렌즈를 만들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기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나오는 게임 렌즈를 구현할 수 있는 소재는 그래핀이 유일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2017년 4월, 박장웅 UNIST(울산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공동연구진과 함께 그래핀을 이용해 렌즈에 부착 가능한 혈당 측정용 센서를 개발했다. 이 센서를 시판 중인 소프트 렌즈에 착용하면 눈물로 혈당을 측정해 당뇨병 환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혈당이 정상이면 LED가 켜지고, 높으면 꺼지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이전에도 콘택트렌즈에 혈당을 확인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해 당뇨병을 모니터링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기존에 발명된 센서에 사용되는 전극은 불투명하기 때문에 시야를 가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또 완성된 스마트 렌즈가 실제 렌즈만큼 유연하지 않아 착용감도 좋지 않았다.
박장웅 교수팀은 투명도가 높고 신축성이 좋은 그래핀과 금속 나노와이어로 만든 센서를 소프트 콘택트렌즈에 삽입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착용감과 투명성을 높인 이러한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2017년 1월 25일자에 실리는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앞서 2017년 2월에는 국내에서는 그래핀을 이용해 전자파 차단 기능을 가진 스마트 렌즈가 세계 최초로 개발됐고, 그보다 더 앞선 2014년에는 미국 미시간 대학교 연구진이 그래핀을 이용해 밤에도 낮처럼 풍경과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렌즈 개발을 시작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이 개발한 FCW 제품. 높은 수준의 접힘성(Bending)과 강도, 내스크래치(Anti-scratch)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
전문가들은 공상과학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해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주는 콘택트렌즈를 개발하려면 그래핀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착용 가능한 디스플레이를 만드려면 투명성과 전도성이 중요한데, 그래핀이 두 가지 특성을 모두 지녔기 때문.
기술사업화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는 "콘택트렌즈에 영상이 비치게 하려면 유리로는 안 되고 그래핀 같은 전도성이 있는 투명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아직 기술적으로 많이 부족하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래핀을 활용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밖에도 그래핀은 전자·전기분야에 활용하면 리튬이온전지의 용량과 성능을 높일 수 있으며, 신축성을 이용하면 폴더블폰과 웨어러블 컴퓨터 제작에도 활용될 수 있어 '꿈의 나노 물질'로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잠재성으로 그래핀 산업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분석 기업 PR Newswire는 그래핀 시장의 규모가 2017년에는 8500만달러(954억원)에서 2018년 2억달러(2245억원)로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2023년에는 시장규모가 10억달러(1조1225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 한 때 그래핀 분야 특허 1위 한국, 지금은 중국·유럽 등에 밀려 3위
한국은 한 때 그래핀 분야 특허 1위를 차지하는 등 '그래픽 강국'의 면모를 드러냈지만, 후발주자였던 중국이 그래핀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해보인다.
존 랑 LCA 경영대학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013년을 기준으로 총 1160개의 특허를 보유하면서 전체 특허 중 15%를 차지해 중국(30%)과 미국(23%)에 이은 3위를 차지했다.
국제표준에 대한 기여도도 3위를 차지한다.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가 지난 2018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그래핀의 국제표준과 관련된 프로젝트 중 22%에서 리더를 수임하고 있다. 한국보다 앞선 나라는 중국(35%)과 유럽연합(26%) 등 2곳이었다.
사실 한국은 그래핀 분야에 있어서는 선도자 역할을 해 왔다. 2010~2011년 한 때 그래핀 관련 특허취득수가 가장 많은 국가였으며, 지난 2011년에는 국제표준기구(ISO) 나노기술분과 회의에서 그래핀 표준에 대한 논의를 최초로 발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중국 정부가 그래핀 분야에 대한 파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중국이 선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중국의 그래픽 특허 출원 건수는 무려 1만5666건으로, 같은 기간 남은 주요국가의 특허건수를 모두 합한것 보다 많다.
2015년 발표된 '그래핀 사업화 촉진 기술 로드맵' 중 일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
물론 한국 정부도 그래핀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오고 있다. 2015년에는 미래부(현 과기정통부)와 산업부는 '그래핀 사업화 촉진 기술 로드맵'을 발표했으며 이에 따라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는 각각 2019년, 2021년까지 1255억, 250억을 각각 투자해 그래핀의 사업화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중국과 유럽, 미국 등 국가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들 국가는 조단위 투자를 통해 연구센터를 건설해 그래핀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기 때문. 또한 정부가 제공하는 R&D 예산도 나노분야에 지원되는 금액 중 일부로서 지급돼 독립적인 예산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애로사항도 있다.
관련해서 산업부 관계자는 "그래핀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노산업 전체가 중요하다"며 "정부가 지원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나노의 범주 내에서 그래핀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작년까지도 신규사업이 진행됐으며 올해에도 계속사업(기존에 진행되던 사업이 계속 지원되는 경우)은 유지되고 있다"며 "정부도 계속 지원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하지만 기업에서도 해야할 역할이 있다"고 덧붙였다.
onjunge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