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거자 "원상복구비 책정 기준 등 제대로 안내받지 못해"
세부 항목별 비용 알려주지 않고 총 부과금액만 덩그러니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서민들의 보금자리’를 표방한 임대아파트에서 관리용역업체들이 퇴거자들의 원상복구비를 현금으로 받아 챙기는 불법을 저지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퇴거자들은 관계 법령을 몰랐거나 원상복구비를 저렴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현금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시 권선구 소재 1200여세대 규모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에서는 장판, 신발장, 옷장 등이 훼손됐다며 관리업체가 현금으로 원상복구비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현재 퇴거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들은 적게는 40여만원에서 많게는 120여만원의 현금을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원상복구 절차 잘 몰라서”
원상복구는 퇴거하는 임차인이 훼손된 시설물을 입주 당시의 상태로 되돌리는 절차를 말한다. 장판, 도배 등은 물론 소모품들도 원상복구 대상에 포함된다. 특정 기준에 따라 감가상각이 적용되며 이에 따라 통상 6년 이상 거주한 경우, 심각한 파손이 아니면 10만원 미만의 원상복구비가 부과된다.
LH공사가 지난해 배포한 '임대주택 수선비 부담 및 원상복구 기준' 중 원상복구 관련 내용. [사진=LH공사] |
임대아파트는 임차인이 해당 주택을 원상복구 한 후 퇴거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절차가 복잡해 아파트 관리업체가 원상복구 절차를 대행한 후 임차인의 보증금에서 해당 비용만큼 제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행 공공주택특별법 시행 규칙에 따라 LH가 마련한 '임대주택 수선비 부담 및 원상복구 기준'에 따르면 "원상복구하고 그에 소요된 비용(실비)을 임차인에 게 부과할 수 있다. 이 경우 비용 부과는 퇴거 시 남겨둔 유보금(보증금)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임대아파트 임차인들이 이 같은 법령이나 절차를 잘 몰라 업체의 말만 듣고 덥석 현금을 건네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관리업체가 “LH에 퇴거점검표를 보낸 후 정식적으로 비용을 청구하면 돈이 많이 나오니 아는 업체에서 저렴하게 처리해주겠다”며 현금을 요구했다고 설명한다. 일부는 이 과정에서 관리업체가 계약서상 원상복구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소모품들까지 청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퇴거자들은 업체에 현금으로 원상복구비를 지불하는 게 불법인 줄도 몰랐다가 뒤늦게 이를 인지하고 LH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원상복구비, 항목별 세부비용은 몰라
원상복구비는 아파트 관리업체가 직접 훼손된 시설물을 점검한 후 퇴거자의 동의를 받아 청구된다. 점검은 '임대주택 수선비 부담 및 원상복구 기준'에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관리업체들은 원상복구 항목에 대한 세부비용은 안내하지 않은 채, 퇴거자로부터 서명을 받은 후 총 보수금액만 알려주고 있는 실정이다.
임대아파트 관리업체가 직접 작성한 ‘입주 및 퇴거시 세대점검표’ 내용. 항목별 세부금액 없이 총 부과금액만 명시돼 있다. |
한 임대아파트 단지의 ‘입주 및 퇴거시 세대점검표’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도배와 장판에만 개별 보수금액이 적혀 있을 뿐 나머지 30여개 항목에는 아무런 금액도 명시돼 있지 않았다. 관리업체가 점검표에 총 부과금액만 표시해 놓다 보니 퇴거자 입장에서는 각 항목 별로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 지 알 길이 없다.
한 임대아파트 퇴거자는 “아파트 관리업체에 원상복구비에 대한 세부비용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자신들이 적절하게 계산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공개를 꺼렸다”며 “실제로 원상복구비가 합당하게 책정된 건지, 그대로 집행이 된 건지 퇴거자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일부 퇴거자는 원상복구비 산정의 기준이 되는 ‘입주 및 퇴거시 세대점검표’조차 받아보지 못한 채 총 부과금액만 안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퇴거자는 “원상복구비가 산정되기도 전에 세대점검표에 서명을 하라고 하더니, 이후 세부항목을 알려달라는 문의에 이미 서명을 해서 원상복구비 청구절차가 끝났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정부가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는 사이에 관리업체들이 저소득층의 주머니까지 털어가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토로했다.
LH 관계자는 “원상복구비는 LH가 내부적으로 마련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부과되고 있다”며 “해당 사안은 관리업체가 융통성 있게 진행하려다 퇴거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