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모범규준 마련했지만 이사회 경영권 승계 위험 노출
법제도안에서 이사회모범 개선 마련, 가이드라인으로 준수 유도
[서울=뉴스핌] 한기진 기자 = 금융감독당국이 금융회사 이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핸드북’을 만들고 있다. 핸드북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이를 금융지주, 은행 등에 배포해 최고경영자(CEO)의 셀프(SELF) 연임, 낙하산 등 외부입김, 사외이사 사이의 자기권력화 등 문제점을 해결하는 기준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금융학회는 ‘금융지주회사 이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주제로 지난 14일 한국거래소에서 정책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지배구조가 없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이 있고 이사회의 역할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금감원이 금융학회에 의뢰한 것으로 알려진 이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담은 ‘핸드북(가이드라인)’ 초안이 이 심포지엄에서 발표됐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와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가 공동으로 미국통화감독국(OCC), 뉴욕증권거래소 지배구조 가이드라인, 캐나다 금융감독국(OSFI)의 이사회 가이드라인과 영국이 1995년 베어링스 은행 사태를 계기로 경영직의 자격과 책임을 규정한 APR(Approved Person Regime)을 참조해서 제안했다.
핸드북은 △이사회의 역할 △이사회 구성, 자격요건, 선정 △리더십 구조 △사외고문 및 자문이사 △운영 △이사회의 책임 △이사의 개인 책임 △사업계획 이사회와 경영진 역할 △위험 관련 이사회와 경영진 역할 등 9가지 항목을 담았다.
우선 이사회의 독립성과 다양성 강화를 위한 방안은 ‘주주추천 이사와 집중투표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금융회사들은 소액주주 추천 사외이사 1인 선임을 의무화하고, 복수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소액주주들만 의결권을 행사한다. 상대적으로 회사 지배주주나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제한한다.
소액주주의 주주추천 사외이사제도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과점주주’ 추천제도가 있다. 우리은행 민영화처럼 4% 내외의 지분을 가진 5대 주주주가 5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것. 과점주주들간 상호견제로 특정주주의 사익추구가 어렵다.
이사회가 금융사의 주요 결정을 독립적으로 주도하지 못해 생기는 리더십 부재 지적은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할 때가 문제였다. 의장을 견제할 수 있는 고참 ‘선임 이사’를 임명해 CEO와 견제, 소통, 협업을 주도하도록 권한을 주는 방안이 제시됐다.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경영에 대한 관심부족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사외고문 및 자문이사 제도’가 있다. 사외고문 및 자문이사란 위험평가, 회계, 전략계획 등에 전문가로, 이사회의 일원으로 정보제공과 자문을 하지만 투표권은 없다.
CEO 승계프로그램 가이드라인으로 △적정한 시기에 현직 CEO와 후보추천위원회가 합의하에 경영권 승계 시기 및 후보자 발표하는 방법 △현직 CEO의 의무적 은퇴 나이 설정 △후보추천위원회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사외이사 선출방식 다양화 등이 제시됐다.
지주회사와 은행 계열사 사이의 긴장관계 유지에도 이사회 역할이 요구됐다. 지주회사가 은행에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면, 은행 이사회는 지주회사에게 ‘중단조치’를 요구한다. 지주사 이사회가 거부한다면, 은행 이사회는 이익 보호조치로 독립성을 갖춘 법률자문관 또는 회계사를 고용하고, 감독당국과 관련된 우려를 제기해야 한다.
이사의 개인 책임도 강화해 중대한 위험 관련 이슈나 사기로 의심되는 사건, 불법 또는 비도적인 행위를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해야 하고, 금융감독당국이 이사의 책임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이사들의 책임은 이사회 및 위원회 회의 참석, 회의 자료 요청 및 검토, 의사결정 등이 일반적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와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사회 핸드북은 모범사례 등에 기초한 제안으로 각종 법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에 대한 시장의 요구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장점”이라고 했다.
한편 금융회사의 이사회 등 지배구조는 지배주주가 없는 분산소유구조와 공익보호라는 명분의 낙하산 등으로 항상 문제를 낳았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계기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규준과 법이 도입됐다”면서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강화를 통해 위험관리기능 등은 다소 강화되었으나 승계문제 등 지배구조의 핵심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KB금융지주, 우리은행, BNK금융지주, DGB금융지주, JB금융지주는 CEO가 임원추천위원회에 참여한다. 이사회 사외이사들은 평균 2.6개의 위원을 겸직해 독립적인 감사기능과 CEO선임 이해상충 가능성이 높다.
hkj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