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의견 무시한채 인상한 후 대기업에게 '분담하라'는 정부
산업계 "협력사 고통은 나눠야…그래도 상황 안좋아"
[서울=뉴스핌] 백진엽 기자 = 한국 경제가 대내외적인 악재로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최저임금까지 급등하면서 발목을 잡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들은 대부분 최저임금과는 무관하지만, 협력사들의 부도 등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지난 14일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10.9% 올렸다. 협상 과정에서 사용자위원들이 반발해 나간 것도, '한국의 최저임금은 유례없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도 최저임금의 두자릿수 인상을 막지 못했다.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전원회의실에서 열린 '제15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8350원으로 최종 의결했다. 2018.07.14 [사진=뉴스핌DB] |
대기업들은 그래도 최저임금 급등의 직접적인 타격을 피해간다. 대부분 임직원들의 임금이 최저임금 이상이거나, 최저임금 이하가 있다고 해도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임금이 최저임금 이상이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다"며 "일부 소수 직종에서 해당이 안되는 경우가 있겠지만 굉장히 미미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기업이라고 마냥 '강건너 불구경'인 것은 아니다. 협력업체들의 고충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이 호황일 경우에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담이 덜하겠지만 지금처럼 경제계 전체가 각종 위협에 처한 상황에서는 타격이 심각하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협력업체들의 임금 등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업황 부진, 대기업의 파업 등으로 근근히 버티던 중소협력사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산소 호흡기'를 떼는 것과 다름없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자동차 관련 협력업체들의 경우 올해 최저임금의 큰폭 상승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이 확정되면서 수익구조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다. 특히 한국지엠 사태 이후 관련 업체들의 수출과 내수판매 부진이 맞물리면서 연쇄효과로 인해 자동차 부품 업계 전체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미 1차 협력사들은 2월 기준 공장 가동률이 50∼70%대로 떨어졌고, 매출액(1∼2월)도 전년대비 20∼30%가량 급감했다. 1차 협력사가 이 정도면 2, 3차 업체들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처럼 부품업체들이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산한다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는 비단 자동차 산업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 모두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 제조업의 경우 중소 협력업체들이 급등한 최저임금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튼튼한 곳을 찾기 힘들다. 대부분 장기적인 경기 침체, 미국과 중국의 통상 압박, 갈수록 떨어지는 생산성 등으로 힘든 상황이다. 여기에 내년 최저임금이 다시 10% 이상 오르게 됐으니 중소협력사들의 줄도산 우려도 엄살에 그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걱정이 크다.
이를 우려한 정부는 대기업들의 납품 단가 인상 등을 통해 협력사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물론 대기업들이 협력사들과 협상할 때 원가 인상분을 감안해 단가를 올려줘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경우 사회적 합의가 아닌 정부 마음대로 큰 폭으로 올려놓고 그 책임은 대기업에게 넘기려는 인상을 준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하라고 하면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면서도 "최저임금 올렸다고 생색은 자신들이 다 내면서 그 어려움은 소상공인, 자영업, 그리고 대기업에게 넘기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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